삼성대는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삼성마을 남쪽에 있는 해변일대이다. 삼성대의 삼성(三聖)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삼성교(三聖敎)에서 모시는 환인(桓因)‧환웅(桓雄)‧단군(檀君) 등을 가리킨다는 설과 원효(元曉)‧의상(義湘)‧윤필(尹弼) 등을 가리킨다는 설, 고려 말의 삼은(三隱)인 목은(牧隱) 이색(李穡)‧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등을 가리킨다는 설 등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의 설은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문헌상의 기록이나 주변의 인문 지리적 환경과도 이렇다 할 연관성이 입증되지 않는 가설에 불과한 듯하다.
또 달리 삼성대는 ‘세미성대’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세미성대’를 줄이면 ‘세성대’가 되고 이를 한자식으로 바꾸면 ‘삼성대(三聖臺)’가 되기 때문이다.‘세미성’의 ‘세미’는 ‘샘’의 사투리 발음이고, ‘성’은 ‘섞’이 발음의 편의상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 ‘섞’은 배를 정박하기 위해 배 밑에 대는 나무를 가리키는 말로 요즘의 ‘서까래’와 같은 말로 보인다. 삼성대의 남쪽에 약수터가 있고, 삼성대 앞의 모래사장에는 배를 대기 위한 섞이 깔려 있기 때문에 샘과 섞을 합해져 ‘세미섞’이 되었고 이것이 삼성이 되어 ‘삼성대’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조선 사회에서 윤필과 이색, 정몽주, 이숭인 등을 현자도 아닌 성인이라 칭하였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보다는 ‘세미성대’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성이 있는 듯하다. ‘세미성대’를 줄이면 ‘세성대’가 되고 이를 한자식으로 바꾸면 ‘삼성대(三聖臺)’가 되기 때문이다.
삼성대는 기장에 유배 온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가 1621년(광해군 13) 동생과 이별하면서 「증별소제(贈別少弟)」 2수를 지은 곳으로 유명하다. 삼성대라는 표지석이 세워진 언덕 아래의 바닷가에 2005년 4월 이를 기념한 ‘고산 윤선도 선생 시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