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근대금융은 일본 제일은행 지점 설립부터이며, 이후 민족자본이 형성되기도 하였음
1870년대 말 제일은행 부산지점이 개설되었으며,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구한국은행(후 조선은행)의 창립 때까지 중앙은행 기능을 담당하였다. 이후 식산흥업을 통한 근대국가 수립의 일환으로 부산에서 민족 금용기관 설립 운동이 추진되었다. 자본금 2만 5천 원으로 1909년 2월에 설립된 구포저축주식회사가 대표적이다.
부산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무역의 전진기지였으나 산업화 이전 시기 수출품은 농수산물이 대종
1948년 부산의 수출총계가 3,817백만원으로서 수입총액 1백만원 보다 크다는 특징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수출의 경우 기타 어패류가 가장 많아 전체의 48.5%를 점하였다. 따라서 당시에 있어서 부산항을 통해서 수출되는 주요품목은 모두가 농수산물 및 광산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1950년대 생필품을 중심으로 한 외국 원조 물자가 부산항을 통해 유입되어 무역이 팽창하게 됨
1950년대 부산의 수입품목을 살펴보면, 생고무가 전체 수입량의 29.7%를 차지하였다. 그다음으로 모직물, 합성염료, 소면 순이었다. 따라서 수입의 주요품목을 모두 공산품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전쟁기와 이후 1950년대의 수출입구조는 군수물자 및 외국 원조의 도입으로 항구의 기능이 크게 증대하여 부산항을 통한 무역액을 크게 팽창하였다.
1962년부터 추진된 경제개발계획으로 노동집약적 경공업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
1960년대 우리나라 수출주도산업인 합판, 섬유, 신발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부산을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1973년에 이르면 부산의 수출액은 7억 9천만 달러로서 전국 32억 3천만 달러의 24.5%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이후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으로 인해 울산·창원·거제 등 동남공업 벨트를 중심으로 석유·화학·기계 및 조선산업이 발전하게 되면서 부산의 성장률이 점차 둔화하였다.
경제개발계획에 따른 수출주도형 산업전략과 궤를 같이하면서 금융기관 규모 급속하게 확대
1960년대에 들어서는 본격적인 경제개발계획의 추진으로 부산의 금융 규모도 급격히 늘어났으며, 1972년 8월 3일 단기금융법, 상호신용금고법, 신용협동조합법 등이 제정되어 비은행금융기관의 규모와 비중이 커졌다. 1987년 12월 제2금융도시 육성계획에 따라 1989년 4월 1일 기술신용보증기금 설치되어 업무를 개시하였다. 이후 부산에 본점과 지점을 둔 금융기관은 예금은행과 제2금융권의 점포 수는 1997년 기준 2,260개에 달했으며, 예금은행은 부산은행을 비롯하여 630개 점포, 비통화금융기관은 새마을금고를 비롯한 1,530개 점포에 달하였다.
경공업에서 중화학 중심의 산업이 전국적으로 정착하면서 지역 산업이 점차 정체되기 시작
1989년 이후 매년 100여 개의 중소업체가 부산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1997년 말 부산의 수출액은 전국의 4.4%에 불과하였다. 주요 수출품은 신발, 섬유, 철강, 조선, 고무, 화학제품 등이다. 부산의 주요 수출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이 경공업 제품보다 중공업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부산산업의 기반인 경공업의 가동률이 저하된 것이 원인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에 따른 지역 금융산업의 위축 및 수도권 집중화, 새로운 도약 가능성 모색
1997년 IMF를 맞아 금융권 구조조정으로 향토 금융기관인 동남은행이 퇴출당하였고, 자금의 역외유출 등 중앙의 예속화가 가속화되는, 즉 국내금융의 수도권 집중화로 인해 부산 금융의 입지가 취약해졌다. 2005년 말 부산의 여·수신 비중은 전국의 5.6%, 수신비중은 6.6% 수준으로 인구 대비 7.6%보다도 낮았다. 금융기관 점포 수는 총 1,115개로 전국 18,648개의 5.2%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부산은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의 25%를 차지하는 동남 경제권을 배경에 두고 있으므로 서울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제2금융도시로서 성장할 잠재력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2005년 1월 27일 한국증권 선물거래소 본사 설립으로 증권선물시장을 동북아 특화금융시장으로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였다는 점에서 부산의 금융산업이 크게 발전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부산은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의 25%를 차지하는 동남 경제권을 배경에 두고 있으므로 서울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제2금융도시로서 성장할 잠재력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 2005년 1월 27일 한국증권 선물거래소 본사 설립으로 증권선물시장을 동북아 특화금융시장으로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였다는 점에서 부산의 금융산업이 크게 발전될 것으로 기대된다.
파생 금융중심지 기능 강화에 따른 증권 파생상품 센터 운영 및 금현물 시장 개설
2011년 8월 KRX 파생상품 센터 설립추진위원회 개최하였고, 2012년 2월에 개소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2018년에는 ‘KRX 데이터 라이브러리’를 KRX 센터에 개설하였다. 또한 음성적 금 거래를 양성화하고 왜곡된 유통체계를 혁신하여 귀금속 산업 발전을 방안 마련하고자 금 현물시장을 2014년 3월 개설하였다.
2018년 9월 동북아 금융허브도시 실현을 위한 「새로운 10년 금융중심지 추진계획」 발표
2018년은 부산시가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지 10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념하고 향후의 발전 전략을 전망하고 추진하기 위해 「새로운 10년 금융중심지 추진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추진계획의 골자는 ① 시민이 행복한 해양수도 실현 ② 관련 금융기관과 공동으로 ③ 부산의 대형투자산업과 연계한 ④ 부산형 금융모델 개발이다.
부산 남구 문현금융로 40 일대를 중심으로 부산국제금융센터를 단계적으로 개발 추진
부산국제금융센터 1단계 복합개발 및 개별 개발사업은 지하 4층 지상 63층 규모로 2008년 4월에 착수하여 2014년 6월 완공되었으며, 30여개 금융기관 등이 입주하여 3,8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2단계 복합개발사업은 지하 7층 지상 36·49층 규모로 금융과 문화가 융합된 복합개발 방향에 따라 2018년 11월에 준공하였다. 도입시설은 1단계 랜드마크 건물 부대지원센터, 업무용시설, 문화시설이며, 문화시설은 구내 최대규모 뮤지컬전용극장(드림씨터어)와 세계 최대규모 한국예탁결제원 증권박물관이 입점한다. 3단계 복합개발사업은 핀테크·블록체인 등 금융기술 생태계 구축을 위한 금융기술타운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유행 및 재확산 반복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 성공적 방어
코로나19, 세계보호무역주의 등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외자유치 여건 속에서 기 진출기업의 증액 투자 유도 등 전략적 투자유치 활동으로 2020년 외국인 투자(신고)는 3억불을 달성하며 2019년 실적(2.9억불)을 상회하였다. 코로나19로 해외방문 IR이 어려운 가운데 해외투자유치 IR 동영상을 제작하여 해외무역관에 배포하였고 비대면 1:1 투자상담회 등을 개최하여 지속적으로 부산의 투자강점을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