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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 연번, 성명, 생몰연대, 주요업적 항목으로 구성된 표
연번 성명 생몰연대 주요업적
1 김갑
(金甲)
1889년~1933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1909년에 항일운동 단체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하여 활동함.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 경상도 대표의원이 됨. 1927년 8월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부장이 되어 재정 마련을 위해 힘씀. 
2 김명규
(金明奎)
1893년~1977년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동래지역 3‧1운동을 엄진영과 함께 준비하고 1919년 3월 13일 동래장터 만세시위에 참가함. 의열단 활동 자금 조달 등으로 독립운동을 이어감. 
3 김법린
(金法麟)
1899년~1964년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범어사 불교전문강원‧범어사 지방학림‧명정학교의 학생들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함. 일제의 탄압으로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 특파원으로 활동하고 불교계 혁신운동도 전개함.
4 김병태
(金餠泰)
1899년~1946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의열단의 첫 거사인 부산경찰서 폭탄투척 의거를 위해 박재혁에 자금을 전달함. 김원봉의 비서, 조선의용대 간부로 활동하다가 한국광복군으로 편입됨.
5 박영출
(朴英出)
1908년~1938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일제의 부당함에 맞서 동래고등보통학교 동맹 휴학과 장산 촛불 시위를 주도함. 동래와 일본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한 강연 및 집회 등을 주도함. 1934년 조선광복회를 조직하여 활동함.
6 박재혁
(朴載赫)
1895년~1921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1920년 8월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입단함. 1920년 9월 14일 고서적 상인으로 위장하고 부산경찰서로 찾아간 폭탄을 투척한 후 현장에서 체포됨. 
7 박차정
(朴次貞)
1910년~1944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근우회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후 중국으로 망명함. 중국 망명 후 의열단의 핵심 멤버로 활약함. 남편 김원봉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함. 곤륜산 전투에서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1944년에 생을 마감함.
8 안희제
(安熙濟)
1885년~1943년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고향의 전답을 팔아 부산에 백산상회를 설립하여 해외 독립 자금을 조달함. 1933년에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함. 
9 양한나
(梁漢拏)
1892년~1976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마산 의신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 학생들과 항일운동을 전개함.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중국으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함. 해방 이후 부산 최초 복지단체인 자매여숙을 설립함.
10 윤현진
(尹顯振)
1892년~1921년 일제강점기 부산에서 수학한 독립운동가. 구명학교를 제1회로 졸업한 뒤 구포저축주식회사에 주주로 참가함. 유학 후 대동청년단의 비밀 결사 운동을 전개함.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혁을 위해 노력하다가 과로로 생을 마감함.
11 이봉우
(李鳳雨)
1873년~1921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1908년에 간도로 건너가 민족학교를 설립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인재 양성에 힘씀. 항일운동 단체의 통일적 규합을 위해 상하이로 가던 중 일본인에게 피살됨.
12 장건상
(長建相)
1882년~1974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함. 광복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의 한 사람으로 귀국함. 1950년에 제2회 부산진 국회의원으로 선출됨.
13 최천택
(崔天澤)
1896년~1961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박재혁의 부산경찰서 폭파 사건 등 의열단원의 국내활동을 도와줌. 신간회 부산지회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함. 광복 후 민주중보 사장으로 취임함.
14 한형석
(韓亨錫)
1910년~1996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음악가. ‘아리랑’ 등 항일 가곡과 군가를 작곡하여 보급함. 『광복군가집』(제1~2집)을 간행하여 보급함. 광복 이후 부산에서 공연 활동을 함.
15 한흥교
(韓興敎)
1885년~1967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조국이 일제에 강점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함. 광복 후 귀국하여 경상남도 도립마산병원의 병원장으로 근무하다가 1948년 부산에서 한내과를 개업함.
16 윤정은
(尹正殷)
1852년~1920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평소 항일 의식이 강했기에 1919년 서울의 3‧1운동 소식을 접하자 68세의 노령으로 앞장서서 참여함. 구포장터 만세운동을 주동자로 체포된 후 옥고를 견디지 못 하고 부산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함. 
17 구수암
(具壽巖)
1901년~1920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1919년 기장면에서 일어난 3‧1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함.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감옥소에서 옥고를 치름. 고문 후유증으로 병보석으로 가출옥하였으나 2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함.
18 김도엽
(金度燁)
1899년~1937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기장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름. 중국과 국내 등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구금과 고문의 후유증으로 1937년에 생을 마감함.
19 김상헌
(金祥憲)
1893년~1945년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법린과 함께 범어사 3‧1운동을 주도함. 3‧1운동 이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함. 독립운동 자금 송금 적발로 옥고를 치른 후 범어사로 돌아와 승려의 훈육에 힘씀.
20 홍재문
(洪在文)
1897년~1958년 부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부산공립보통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면서 3‧1운동에 참여함. 『조선 독립신문』 발행과 임시정부에 군자금 조달하다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름.
21 김선갑
(金銑甲)
1921년~1942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부산제2상업학교 재학 중 경남학도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에서 일본인 심판 노다이의 부당행위에 항의한 부산항일학생의거를 주도하다가 검거됨. 출옥 후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함.
22 곽상훈
(郭尙勳)
1896년~1980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인 동래에 내려와 동래장터 3‧1운동을 주도함. 상하이에서 중국본부한인청년동맹에 참여하여 독립운동 활동을 함. 해방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가함.
23 문시환
(文時煥)
1897년~1973년 부산 출신 독립운동가. 일본 유학 후 동아일보사 부산지국 기자 활동을 하다가 의열단에 입단하여 독립운동을 함. 해방 후 경상남도지사로 임명됨.

* 부산의 인물은 『부산을 빛낸 인물』(전3권, 2001년~2003년) 수록 인물을 분야별로 재정리함.

** 부산의 인물에 관한 자세한 것은 부산소개 > 부산의 역사 > 향토사도서관을 이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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