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운대는 예로부터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 출렁거리는 파도와 수려한 모래밭 등 빼어난 경승지로 이름나 있을 뿐 아니라, 갖가지 모양의 크고 작은 무인도가 몰운대 주위에 산재해 있어 풍경이 한층 더 돋보인다. 몰운대는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섬 전체가 안개와 구름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전한다. 몰운대의 지형은 학이 날아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몰운대의 빼어난 자연 경관은 다대 팔경(多大八景) 중 제1경인 ‘몰운관해(沒雲觀海)’로 몰운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아름다운 경관을 말한다. 또 하나의 제1경은 ‘화손낙조(花孫落照)’로 몰운대 동쪽 끝자락 화손대(花孫臺)에 깔려 드는 저녁노을의 빼어난 아름다운 경치이다. 지금도 개발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군사 작전 지역으로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다가, 1997년 이후 출입이 허용되었다. 맑은 날이면 수평선 저 멀리 대마도가 보인다.
몰운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동래부사 이춘원(李春元)의 시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에 전하는데, “호탕한 바람과 파도는 천만 리에 펼쳐 있고/ 흰 구름이 하늘을 덮으니 외로운 몰운대는 사라지고/ 동쪽 하늘 둥근 아침 해는/ 늘 선인(仙人)이 학을 타고 오는 것만 같구나(浩蕩風濤千萬里 白雲天半沒孤臺 扶桑曉日車輪赤 常見仙人駕鶴來)”라고 하였다. 또한 통신사 조엄(趙儼)은 『해사일기(海擄日記)』(1763)에서 해운대와 몰운대의 경치를 비교하면서 “몰운대는 신라 이전에는 조그마한 섬으로 고요하고 조용한 가운데 아름답고 아리따운 여자가 꽃 속에서 치장을 한 것 같다”라며 절경에 감탄하였다 한다.
진재(眞宰) 김윤겸(金允謙, 1711~1775)이 1770년(영조 46) 소촌도 찰방(召村道察訪)에 임용되어 진주를 중심으로 한 인근을 유람하고 그린 『진재 김윤겸필 영남기행화첩(眞宰金允謙筆嶺南紀行畵帖)』(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56호)에 실려 있는 몰운대 그림은 당시 실제 경치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몰운대에는 다대진동헌(多大鎭東軒,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과 임진왜란 당시 부산포해전(釜山浦海戰)에서 선봉에 서서 끝까지 싸우다가 순절한 녹도만호 정운(鄭雲)장군을 기리는 정운순의비(鄭雲殉義碑)(부산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20호)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