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정
제1장 지세 및 기후
제2장 인구
제3장 도시계획
제4장 주택
도로 · 교량
제6장 상수도
제7장 하수도
제8장 사회복지
제9장 보건 · 위생
제10장 환경보전
제11장 공원 · 녹지
제12장 문화 · 관광 · 체육
제13장 산업경제
제14장 해운 · 항만
제15장 교통 · 통신
제16장 교육
제17장 치안
제18장 민장위 · 소방
제19장 지방의회운영
제20장 일반행정

第3節 釜山精神發掘·繼承

1. 釜山을 빛낸 人物 發掘

  부산발전의 밑거름을 구축하신 선열들을 발굴하여 그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 선양함으로써 건전한 시민정신을 창출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인성함양을 도모하고자 우리 시에서는 사학자 등 전문가로 구성된「부산을 빛낸 인물 선정위원회」에서 20세기 이전 부산을 빛낸 인물(20인)을 선정하여 책으로 발간하였다.

  총 196페이지로 만들어진 이 책에는 사적지, 사진, 그림, 서적 등을 함께 소개하고 있으며, 주요인물은 신라말 대학자 최치원(崔致遠)은 해운대 지명이 선생의 자(海雲)에서 유래하였고, 동래 출신의 고려중기 문인인 정서(鄭敍)는 “정과정곡” 등 불후의 명작을 남겼으며, 물시계인 자격루와 금속활자 등을 발명한 동래부 관노 출신인 장영실(將英實)은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이다. 또한, 임진왜란때 동래부사였던 송상현(宋象賢)을 비롯한 노개방(盧蓋邦), 조영규(趙英圭) 등은 동래읍성에서 왜군과 최후까지 맞서다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공적이 있으며, 김정서(金廷瑞)와 문세휘(文世輝) 등 임란 동래 24공신은 임란때 스스로 병사를 일으켜 적과 맞서는 기개를 과시하였고, 김옥계(金玉戒) 등 수영25 의용은 부산진성과 동래성이 무너지고 강토가 왜군에게 짓밟히자 의병을 일으켜 게릴라전을 펼쳐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점 등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부산을 빛낸 인물 선정위원회」는 2년여의 작업 끝에 비매품으로 펴낸 책을 전국의 공공도서관, 박물관, 문화원, 대학도서관, 부산지역 초·중·고등학교에 배부하여 부산의 정신사 재정립에 기여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책에 수록된 주요인물은 다음과 같다.


20世紀 以前 釜山을 빛낸 人物 選定 現況

시대별

분야별

인물명

주 요 업 적

통일신라

-

최치원

○ 해운대 지명이 선생의 자(海雲)에서 유래하였고

○ 현재 해운대는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잡고 있음

고려시대

문  학

정  서

○ 귀양지 동래에서「정과정곡」을 지음

○ 국문학상 고려시대 문학의 대표적 인물, 부산문학의 뿌리

조선시대

과  학

장영실

○ 동래부 관노출신으로 천문 과학기기의 발명과 제작 등의

    공으로 당상관에 오름, 자격루·천문 관측기기 등 제작 및 발명

임진왜란

송상현

임진왜란시 동래읍성 전투에서 군·관·민의 선두에 서서

   왜군에게 길을 내어 줄 수  없음」을 몸소 실천하다 순절

송상현

부 기

노개방

동래부 교수로 재직하다 휴가 중 임진왜란 발발의 소식을

     듣고 임지에 복귀하여  죽음으로 성현의 위패를 보존하고

   송부사와 함께 성을 지키다 순절

조영규

양산군수 재직시 임진왜란 소식을 접하고 단신의 몸으로 왜병의

     포위를 뚫고 동래읍성으로 들어가 송부사와 함께 성을 지키다 순절

임진왜란

정  발

임진왜란시 부산진 전투에서 군·관·민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성을 지키다 순절

정  발

부  기

이정현

임진왜란시 임지가 아닌 부산진 전투에서 정발과 함께

    성을 지키다 순절함

임진왜란

윤흥신

○ 임진왜란시 다대포 전투에서 군·관·민의 선봉에 서서

    왜군과 싸우다 순절

24(별청)

공   신

임진왜란시 부산지역 전투에서 대표적 공훈을 세운 병조참의

    김전서 외 23인

수영25

의  용

민간인으로 임진왜란 중 국권회복을 위하여 게릴라전 등으로

    왜군과 맞서다 순절하신 최수만 외 24인

사명당

부산성을 축성하는데 공헌

○ 해운대(승당마을)지역에서 승병활동 설이 있음

문  학

박인로

○ 임진왜란시 부산 연안전투에 참전하였고, 1605년

   ·선상탄·을 지음

문  학

이  선

○ 유배지 기장에서 송강가사를 집대성「송강가사 이선본」

     완성하므로 국문학상 큰 업적을 남김

국토수호

안용복

동래부의 수군으로 울릉도 수호를 위해  일본과 담판하는 등

    국토수호의 대표적 인물

목 민 관

이안눌

임진왜란후 동래부사 재직시 부산(동래)지역 임진왜란 당시의

     사적, 역사, 정신사 정립에 공헌

조  엄

○ 동래부사 재직시 임진왜란 때 부산지역  윤흥신 공의 사적

    정리 및 우리나라에  최초로 고구마를 도입

강필리

동래부사 재직시 동래온천 개발과 우리나라 고구마 재배

     및 보관법 등을 정립

정현덕

동래부사 재직시 일본교섭 업무를 담당하여 명치정부의

     국교 재개요구를 거부함으로써 국권을 수호함

○ 동래를 소재로 한 「동래별곡」을 남김

화  가

변  박

동래부 소속 회원으로 1763년 통신사를 수행하여 화원

    김유성과 함께 활약

래부순절도, 부산진순절도 왜관도 등 국보급 작품을 남김

자료 : 문화예술과

2. 釜山民主公園 造成

1) 助成目的

  한국 근·현대사의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해 온 4.19민주혁명과 부마 민주항쟁 및 6월항쟁으로 이어져 부산시민의 숭고한 민주희생 정신을 기리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민주공원을 조성하고 이를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하여 시민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아울러 민주화의 산실인 부산의 역사적 위상을 높이는데 있다.

2) 施設槪要

  ○ 위    치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산 10-4번지 일원(중앙공원內)

  ○ 부지면적 : 20,337㎡(6,152평)

  ○ 건축규모 :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5,278㎡(1,600평)

  ○ 시설내용

   - 상징조형물 : “민주의 횃불”

   - 1층 : 중극장 419석, 소극장 116석

   - 2층 : 사무실, 연구실, 자료실, 휴게실, 매점, 상설전시실

   - 3층 : 기획전시실, 전산실, 식당

   - 야외공연장, 야외광장, 연못, 일주도로, 수목원, 야생초화류공원 등

3) 助成 推進內容

  1996년 1월, 부산시와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가 공동으로 부산민주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1996년 7월, 부산민주공원조성범시민추진위원회를 발족하였다.

  1997년 4월 부산민주공원 설계경기 공모를 실시하였고 사업비 160억원(시비80, 국비80)으로 1997년 10월 공사를 시작하여 1999. 10월에 부산민주공원을 개관하였으며, 1999년 12월에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 운영위탁계약을 체결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부산민주공원 조성추진 경과는 다음과 같다.

  ○ 1996년  7월   부산민주공원조성범시민추진위원회 발족

  ○ 1996년 12월   부산민주공원 조성 아이디어공모전 개최(50개작품 접수)

  ○ 1997년  4월   부산민주공원 설계경기공모

  ○ 1997년 10월   공사 기공

  ○ 1998년  6월~1999년 3월   부산민주공원 개관 준비를 위한 공청회

  ○ 1999년 10월   부산민주공원 개관

3. 백산記念館 運營

  백산기념관은 1995년 8월 15일 백산 안희제 선생(1885~1943년)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광복 50주년을 맞아 건립하였다. 선생은 1885년 8월 14일(음력)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민족적 위기 상황 속에서 민족교육, 민족기업 육성, 항일언론 등 다방면에 걸쳐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에서 활동하다가 일생을 바친 민족독립운동가였다.

  특히, 선생은 이 곳 기념관의 자리에 백산상회(1914~1919년), 백산무역주식회사(1919~1928년)를 설립 운영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 상해 임시정부와 국내외 독립운동단체에 많은 독립운동 활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이러한 백산 안희제 선생을 비롯한 항일독립 운동을 위해 일생을 바친 선열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고 민족사랑 정신을 이어받고자 다양한 전시회와 행사를 개최하여 연간 5만명 이상의 관람객들이 방문하고 있어 부산문화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명실공히 청소년의 산 교육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념관 현황>

  ○ 소 재 지 :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3가 10-2번지

  ○ 부    지 : 부지 324㎡(광장 119㎡)

  ○ 건    물 : 연면적 430.52㎡(지상 1층 204.04㎡, 지하1층 201.80㎡, 옥상 24.68㎡)

  ○ 시설내용

    - 제1전시실 : 유품 및 역사사료 86점, 독립운동사 등 대출용 교양서적 327권, 방문기념품 6종

    - 제2전시실 : 기획전시회, 영상물 시청시설

    - 광        장 : 휴게시설, 관람객 쉼터, 각종기념행사 등

  그 동안 기념관에서는 일제 강점기시대에 중국·일본·미주·러시아 등 해외에서 활약하였던 선열들의 독립운동 사진을 전시한 「해외독립운동 사진전시회」를 비롯하여 나라사랑·가족사랑 정신을 고취하고자 「태극기 사진전시회」, 「가훈전시회」, 「추석맞이 전통민속연 전시회」, 「전통문화체험 한마당」, 북한의 생활·자연·명소소개와 6.15정상회담을 축하하는 「6.25 사진전시회」등을 개최하였다.

4. 樂山 김정한先生 生家復元

  요산 선생은 향파 선생과 더불어 지역문학의 양대산맥을 이끈 거목으로서 선생의 민족문학 정신을 기리고 부산이 낳은 민족작가 선양으로 시민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요산 생가복원을 추진하였다.

  요산 생가복원은 금정구 남산동 661-4번지에 대지 126평, 17평의 건물을 복원하고 있으며, 건물복원은 목조기와 17평을 해체하여 안방은 선생의 유품을 전시하고, 작은방은 저서를 전시하며, 뒷방은 임시관리사무실을 조성할 계획이다.

  요산 생가복원을 위하여 2002년 8월에 (사)요산기념사업회를 설립(이사장 : 김중하)하여 2002년 12월부터 건물철거를 시작으로 2003년 상반기 중에 완공을 목표로 복원공사를 추진하고 있으며, 향후 요산 선생의 생가가 복원되면 부산의 문화관광 인프라로서의 관광자원으로 활용될 것이다.

5. 향파 이주홍선생 文學館 造成

  한국문학의 거목으로서 한국 문학사상 전 장르에 걸쳐 창작활동을 하신 향파선생의 창작산실을 보존하기 위하여 향파 문학관을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향파 문학관은 동래구 온천동 177-18번지에 선생이 기거하시던 대지 50평에 1층 30평, 2층 25평의 실내공간, 도서실, 자료실과 20평의 정원으로 되어 있으며, 1층은 일반도서와 서화를 정리해 뒀으며, 2층은 선생의 친필 서화, 원고 등을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문학관 조성을 위하여 2002년 2월에는 이주홍 문학재단(이사장 : 강남주)을 설립하여 준공 후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문학관 준공으로 선생의 작품세계 위업을 기리고 시민과 작가들에 대한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장으로 활용하고 탐방객에 대한 문화관광 코스로 활용되고 있다.

6. 박차정義士 銅像建立

  일제때 항일운동을 주도한 여성독립운동가 박차정(朴次貞) 의사는 1910년 동래 복천동에서 태어나 1924년부터 조선소년동맹 동래지부에서 항일활동을 시작하여 1930년 1월 광주학생 운동의 후속으로 일어난 서울의 여학생 시위사건과 부산방직공장 파업사건을 주도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뤘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대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여자의용군을 모집하여 여자의용대장으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전과를 올리다가 1939년 2월 중국 강서성 곤륜산전투에서 왼쪽 어깨에 적탄을 맞아 그 후유증으로 1944년 5월 27일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35세의 나이로 산화하였다.

  이와같이 박차정 의사는 일제치하 여성독립운동가중 두드러진 활동을 하였으나 남편 김원봉의 월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가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난 후 정부는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박의사의 공적을 인정하여 유관순의사와 동급인 대한민국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이에 부산지역 인사들이 모여 박차정 의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96년 사단법인 박차정의사숭모회를 결성하였고, 2001. 3월에는 3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금정구 구서동 금정문화회관 옆 만남의 광장에 높이 4.8m, 기단폭 8.7m, 태극기단 4.5m규모로 박차정 여사 동상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