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연관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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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피란수도 부산은 당시 문화와 경제의 중심이었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새로운 문화를 꽃 피웠으며, 당시 피란민의 정착,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여러 기억과 가치를 지닌 유산들이 생겨났다. 원도심을 포함한 부산 전역에는 피란수도와 관련한 문화유산들이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개발과 도시화 과정 속에서 사라지거나 흔적으로만 남아있는 유산들도 있지만 이 역시도 부산의 삶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부산의 정체성과도 같은 유산들을 지키고 알아가고 기억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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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요 사세요~ 국제시장
부산광역시 중구 중구로 42일대 - 해방 후 연합군의 공습을 피하려고 공터로 비워둔 신창동 일대에 연합군의 물품과 일본인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남기고 간 물품들을 귀환 동포가 매매하면서 형성된 시장이다. 도떼기시장·자유시장으로 불리다가 1950년대에 한국산·미국산· 일본산 등의 물건을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의미의 국제시장이 되었다. 1950~60년대부터 엄청난 번영을 누리면서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지역으로서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와 함께 발전했으며, 한국전쟁 시기 피란민의 삶의 공간이자 이후 남한 상권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여 문화사·경제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2014년 동명의 영화가 개봉되어 천만 관객 이상을 동원하는 등 큰 흥행을 거두어 국제시장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크게 증가했다. 특히 실제 촬영장소인 ‘꽃분이네’는 현재 카페로 운영하며 국제시장의 대표 공간으로서 존재하고 있으며 아케이드 설치 등 현대화 되어 가고 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부산광역시 미래유산으로도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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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거 빼곤 다 있어 부평깡통시장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일대 - 개항 이후 부평동과 서구일대에 조선인이 모여 시장을 연 것에서 시작하여 이후 일본인이 대거 유입되어 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발달한 시장으로, 1910년 전국 최초 공설시장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후 1970년대 미군 물자 통조림을 많이 판매하게 되어 깡통시장으로 불리었다. 1970-80년대 부산에서 유일하게 각종 외제물품을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 인기를 누렸으나, 수입개방 이후 외국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장이 쇠퇴하게 되었다. 2013년 국내 최초로 야시장을 열었고, 전 세계 전통음식과 같은 먹거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해외의 전통 수공예품들도 구경할 수 있는 시장이 되었다. 부평깡통야시장은 상설 야시장으로서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으며, 부산을 대표하는 야간 관광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부산광역시 미래유산으로도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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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 내 책은 어디에 보수동 책방골목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 1가 책방골목 8 - 부산시 중구 보수동 1가 일대의 좁은 골목에 헌책방 가게가 밀집된 특화 거리로 국내유일의 헌 책방거리다. 한국전쟁 발발로 서울대를 비롯한 10개교로 이루어진 전시연합대학이라는 비상연합체가 부산에 자리를 잡고 성립되었다. 전시연합대학 중 상당수 학교들이 구덕산 자락과 보수동 일대에 임시로 피란학교를 세웠다. 이에 보수동은 학생들로 붐볐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책, 옷, 생필품을 파는 상인들이 생겨났고 당시 등하교가 이루어지는 골목의 노점과 가건물에 피란민이 책방을 열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거의 모든 종류의 책을 취급하고 있는 곳으로 책을 구하기 힘든 학생의 학업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 장소로서 서민의 문화와 교육이 교류되었던 공간이다. 현재는 저렴한 가격에 책을 구입하려는 사람과 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독특한 풍경을 보려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으로 50여 년의 역사를 잇는 부산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으며 카페와 책방골목문화관과 같은 시설들로 생겨났다. 도심재개발에 밀려 여러 서점들이 폐업하는 등 어려움이 있으나 지역민의 상생과 보존활동 노력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부산광역시 미래유산으로도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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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밑에서 만나자~ 영도다리(영도대교)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교동 1가 190-1 - 피란민들의 만남의 장으로 사용되었던 애환의 장소였다. 영도다리는 하루에 7회씩 도개하였는데. 이러한 상징성으로 인해 피란 중에 헤어진 가족을 찾을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피란민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주변에는 자연히 이들의 사연을 듣고 상담하는 점집(점바치골목)들이 성행하는 등 피란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곳이었다. 1934년 준공된 근대식교량으로 당시 길이 214.7m, 폭 18m로 ‘부산대교’가 정식 명칭이었으나 시민들이 ‘영도다리’라고 불렀다. 1982년 인근에 나란히 선 ‘부산대교’가 준공되면서 ‘영도대교’로 개칭되었다. 1966년부터 도개가 중단되었다가 2013년 복원·확장 공사를 통해 교량 폭이 넓어지고 도개 기능도 회복하였다. 현재는 매주 1회, 토요일 2시부터 15분간 도개행사가 진행된다. 역사적 가치에 따라 부산광역시지정 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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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튼다. 단디 준비해라 복병산배수지
부산광역시 중구 샘길 10 - 1900년대 개항 이후 개항장 거류민의 식수 공급을 위해 1910년 건립된 수도시설로 부산에 본격적인 상수도 시대를 열게한 구조물이다. 한국전쟁기에는 피란수도 부산의 원도심 일대에 생활용수를 공급했다. 성지곡수원지로부터 물을 끌어와 현재의 중구와 동구 일대 각 가정과 영업소, 공동수도전에 물을 공급했던 근대식 상수도 시설이었다. 당시 하루 4만t 이상의 물이 필요했으나 공급된 양은 2만t에 지나지 않아 저지대에서는 2~3일에 한번씩 급수가 이루어졌고 산복 등 고지대에는 4~5일 간격으로 물이 공급되었다. 급수시간도 2시간 정도에 불과했고, 물 공급은 기껏 가구당 세 동이로 제한되었다. 따라서 급수 시간이 되면 원도심지역의 공동수도 앞에는 물 양동이가 고리를 문 채 수백미터가 넘는 행렬을 이루는 등 진풍경이 펼쳐졌다. 한국 초기 근대 상수도 시설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관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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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에베레타 타봤나 한국전력중부산지점
부산광역시 서구 까치고개로 252 - 1932년에 준공된 옛 남선전기 사옥으로 지어진 건물로, 당시 부산에서 최초로 최첨단 냉난방시설 및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한국 근대 사옥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지하 1~지상 4층의 구조로 근대 르네상스 양식이며, 철근 콘트리트 구조로 외벽은 석재로 마감을 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수도때는 상공부가 소재하여 일부를 긴급히 쓰이기도 하였다. 현재는 한국전력 중부산지점로 사용 중이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관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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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부산 다왔다. 다왔어 가덕도 등대
부산광역시 강서구 외양포로 10 - 가덕도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1909년 준공되고 점등하여 항료표지 시설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벽돌구조의 팔각형 형태로 외부는 백색으로 도장하여 마감되었으며, 근대 서구 건축의 양식·건축재료·의장수법이 최초로 사용된 건물 중 하나로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의 유입과 군수물자 수송 등 부산항으로의 입항 항로를 유도했던 시설로서 피란선을 차고 오는 피란민들에게 등대의 불빛은 안도와 희망의 불빛과 같았을 것이다. 역사적 가치에 인정받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관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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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다가 아니었어 부경고등학교 본관
부산광역시 서구 망양로33번길 12 - 1927년 준공된 붉은 벽돌 건물로 광복 이후 경남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사용되었다. 한때 군인병원으로 사용되었던 적이 있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징발되었으나 어떠한 군사시설로 전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참고로 관내의 기숙사의 경우에는 육군여자의용군훈련소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전형적인 근대기 관공서 건물 형태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괸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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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 속에서도 사람의 손길이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로99번길 5-1 - 1924년에 지어진 로마네스크양식의 벽돌조 건물로 최초 내부 평면은 1랑식 장방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1964년 측랑이 증축되어 변형된 2랑식 평면구성을 갖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고아원을 개원하여 전쟁고아들을 돌보거나 사회구호활동을 위한 구호금을 모금하고 구호소를 설치하여 운영하기도 하였다. 부산으로 몰려 온 피란민들을 성당에 수용하였다고 하며 의식주를 돕기 위해 국방부의 허가를 받아 ‘성공회 의용봉사단’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관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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