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근대역사관
#Ⅰ. 다시쓰는 역사 두 번째: 세계유산 등재 추진과 피란수도 부산 문화유산
2023년 5월 1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의 피란수도 부산유산이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제출되어 등록된 날입니다. 2015년에 제안되어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시작한 이후 8년 만의 쾌거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유·무형의 대상 유산들을 조사한 것을 시작으로, 오랜 기간 우여곡절을 거치며 세계유산이 되기 위한 기본요건을 갖추었고, 등재 가치를 아우를 수 있는 유산들로 추려낸 끝에 9개의 연속유산 '부산항 제1부두, 경무대(임시수도대통령관저), 임시중앙청(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국립중앙관상대(부산기상관측소),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아미동 비석마을),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우암동 소막마을), 유엔묘지(재한유엔기념공원), 하야리아기지(부산시민공원)으로 구성된‘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Sites of the Busan Wartime Capital)'이 잠정목록이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부산은 피란민의 포용, 재건과 희망이 싹튼 땅으로서 절체절명의 대한민국을 구해냈던 곳이라 할 수 있는데요. 피란유산은 그러한 역할과 가치의 증거물들입니다. 피란유산의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는 피란수도 부산유산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산으로 국내에서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만 최종적인 세계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세계인이 공감하고 인정할 수 있는 탁월한 보편적가치(OUV)가 필요한데요. 이를 위해 지속적인 조사연구를 토대로 피란유산 속에 내포하고 있는 세계유산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유산의 실제적인 보존관리방안도 필요합니다. 사실 기존 국내의 세계유산이나 타 시도의 잠정목록 유산들은 국가사적 급의 유산들이 대부분으로, 등록문화유산을 포함하고 있는 피란유산은 유산의 가치를 떠나서 보존관리 면에 있어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피란수도 부산유산들은 지정·등록 등 문화유산법에 따라 어느 정도 보호되고 있지만, 과밀한 도시화가 이루어진 건물들 사이에서 언제든 개발압력의 위협과 왜소화 문제에 처해있는 것이 현실이지요. 유산 대부분이 관공서나 학교, 국가시설 등으로 국가와 시, 대학재단의 소유로 그나마 지금껏 문제없이 유지되어왔으나 오랜 등재 추진 과정 중에서 개발 논리로 유산이 큰 위험에 처하기도 했고, 이해관계자들의 반대나 우려, 유산가치에 대한 몰이해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뜻있는 연구자나 시민, 관계자분들의 도움이 있었고 앞선 선임 담당자분들의 노력으로 현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일례로 북항 재개발과정 중 사라질뻔한 ‘부산항 제 1부두’는 유산을 관통할 예정이었던 도로를 오랜 논의와 협의를 거쳐 도로선형을 바꾸고 원형을 보존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피란유산을 세계유산을 목표로 키워나가는 업무를 맡게 된 후, 피란유산과 관련한 기사가 나면 시민들의 댓글을 다 찾아서 읽어보게 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마치 아이돌 매니저가 된 마냥 시민들의 반응에도 민감해졌는데요. 유산을 무가치한 존재로 여기는 댓글이나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어 공감하며 응원해주시는 댓글 등 시민들의 반응도 다양합니다. 부정적인 댓글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유산 자체에 대한 인식 제고와 함께 지역민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매년 문화유산 야행과 시민 아카데미와 같은 행사와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인 유산가치 공유와 활용을 통해 그 가치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아직은 더 많은 홍보를 비롯하여 유산가치 이해, 문화유산의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이 더욱더 필요함을 느낍니다.
잠정목록이 된 9개 유산 외에도 원도심과 부산 일원에는 피란수도와 관련된 수많은 유·무형의 자산들이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그런데도 도시화에 따른 개발정책과 개발 논리에 밀려 숙고도 없이 역사적 가치를 품은 유산들이 점차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잊히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유산의 보존과 개발의 균형점을 찾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문제인데요. 저 역시도 부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민들의 삶이 더 윤택해지는 부산의 발전을 기대합니다. 개발의 목적과 기대 측면에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단순히 문화유산이 개발을 막고 지역을 낙후시킨다는 생각은, 이 땅에 오랜 시간 먼저 있어 온 문화유산을 괜한 희생양으로 삼는 듯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과 노력은 필요하고, 그것이 우리가 나기 전부터 이 땅을 지키며, 역사를 만들어온 문화유산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 생각됩니다. 문화유산은 개인의 것이 아닌 모두가 아끼고 잘 가꾸어 미래세대에 넘겨주어야 할 자산이니까요.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 그 가치에 대한 패러다임도 시대변화에 따라 변화하고 있습니다. 문화유산은 그 활용 여하에 따라 개발을 넘어서는 이익을 가져다줄 수도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은 엄청난 파급력과 영향력을 터트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습니다. 언젠가 피란수도 부산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면 등재된 유산 외 부산의 수많은 관련 유산들도 함께 빛을 보리라 기대해봅니다.
지역이 가진 문화유산은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그 자체로 지역의 정체성이 되며, 그 정체성을 토대로 고유한 문화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피란수도였던 부산은 다른 곳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자산을 가진 셈입니다. 하지만 정작 부산에 사는 우리는 그 가치와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쳐오진 않았나요? 피란수도 부산유산은 단순히 개발 논리에 밀려 소리소문없이 아무렇게나 사라져도 될 고리타분한 무언가가 아닙니다. 향후 부산의 장기적인 발전과 문화도시로의 도시 브랜드 제고를 위해서도 꼭 우리가 가진 유산가치를 보존하고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준비했고, 이제 첫발을 내딛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부산시의 장기적 안목과 굳은 의지,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은 꼭 필요합니다. 등재 추진의 과정은 어렵고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우리 유산을 알아가고 지켜가며 세계에 알리는 소중한 여정이 될 것입니다. 그 여정을 부산 시민들과 함께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