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근대역사관
#1. 다시쓰는 역사 두 번째: 저마다, 누구나 기록하는 별관
별관에서 '기록'을 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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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하은지 부산근현대역사관 운영팀 주무관
부산 유일의 기록 주제 행사, <2024 기록, 부산>의 의미
오는 12월 6일(금)부터 13일까지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옛 미문화원 자리, 이하 별관)에서 <2024 기록, 부산>이라는 제목의 ‘기록을 주제로 한 행사’가 열립니다.
지난해에는 ‘제1회 부산기록축제’로 명명한 행사인데요. 2023년에는 부산에서 열린 첫 기록 성과 공유회라는 측면에서 ‘축제’의 성격을 부여했다면, 2회째를 맞는 올해는 “부산이라는 시공간에 더욱 집중”하고자 ‘기록’이란 단어 앞에는 시간(2024)을, 뒤에는 공간(부산)을 넣은 새 이름을 붙이고 세부 프로그램을 구성하였습니다.
라키비움(도서관+기록관+박물관)으로 재탄생한 별관
별관에서 기록 행사가 열리는 것에 대해 의아한 분들이 많을 겁니다. 과거 부산근대역사관의 모습을 기억하시는 분들에게는 아직도 별관의 내부가 낯설 텐데요. 부산시는 2017년 부산근대역사관이던 현재의 별관을 옛 한국은행 부산본부(현 부산근현대역사관 본관)와 함께 박물관으로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2020년 3월, 옛 부산근대역사관이 내부 리모델링에 들어갔고, 2022년 12월 말 공간 조성을 완료하여 2023년 3월 1일 공식 개관하였습니다.
별관을 찾는 분들께서 종종 “이곳은 도서관인가요?”라고 물으십니다. 저는 “그렇기도 하지요”라고 답변드립니다. 정말 일부는 맞습니다. 별관은 ‘라키비움(Larchiveum)’이라는 콘셉트로 재탄생한 공간입니다. 라키비움은 도서관(Library)과 기록관(Archives), 그리고 박물관(Museum)의 영어 단어를 조합한 합성어입니다. 1층에는 서가(書架)가, 2층에는 건물의 역사를 다룬 전시 공간이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역사관의 ‘별관(別館)’이기에, 세계 또는 국가 단위 역사를 다룬 단행본과 지역(도시나 마을)을 기록한 책이 서가 공간의 대다수(소장 도서의 55%)를 차지한다는 점이 별관의 주요한 특징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역사가 더는 어렵게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별관에서는 인문 강연‧공연‧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 및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지역사를 눈으로 보고 듣고, 몸으로 느낄 수 있다.”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별관의 운영 방향입니다.
별관에서 ‘기록’을 말하는 이유
별관의 역할 중 위에서 언급되지 않은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기록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입니다. 단순히 콘셉트 때문만이 아닙니다. 지금 별관을 채우고 있는 책을 비롯해 모든 콘텐츠는 누군가의 기록을 바탕으로 가공해 얻어진 것들입니다. 그런데 만약, 후세인 우리가 더는 기록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득하던 서가에 이내 공백이 생길 겁니다. 이 공백은 ‘문화적 빈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기록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거를 사례 삼아 현재를 구축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힘을 잃게 될 겁니다.
특히 ‘현대사’는 ‘지금 이 순간’마저도 포함하는 역사입니다.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움켜쥐지 않으면 순식간에 다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록해야 합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부산의 모습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또는 글이나 음성으로 말이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습니다. 나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사는 공간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기에 나 자신을 기록하는 것은 부산을 기록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일상의 한 토막을 손글씨로 써보거나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아 SNS에 올려보는 겁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꾸준히’ 하는 것이겠지요. 의미는 반복을 통해 발생하니까요.
현대사는 우리에게 너무 가깝고, 또 사소하게 느껴져 ‘이것도 과연 역사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습니다. 16세기 이탈리아에 살던 방앗간 주인 ‘카를로 진즈부르그’가 쓴 『치즈와 구더기』가 당대 사회‧경제‧종교상을 가장 섬세하게 기록한 대표적인 저서로 평가받듯이, 우리가 남기고 있고, 앞으로 남기게 될 사소한 기록들은 훗날 많은 이에게 읽히며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부산 근현대사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역사관의 한 부분을 별관이 담당해야 한다면, 그 역할은 바로 ‘사소하지만 위대한 기록’이 모든 사람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또한 이 기록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일상의 기록에서 지역사 기록으로 한 걸음 더
1999년 국가가 기록물관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법률을 제정하고 국가기록원 정책을 마련한 이래로, 기록은 현시대의 중요한 화두이자 과제였습니다. 민주주의와 시민 의식의 성장으로, 기록물을 생성하는 주체 또한 국가에서 민간으로까지 점진적으로 확대되었는데요. 누구나 읽고 쓸 수 있고, 기록하는 매체도 다양해졌습니다. 과거에는 기록이 전문가의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모두가 기록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죠.
실은 우리 모두 매일 기록을 하고 있지만, 지역사를 기록하려면 조금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선 오늘날 부산이 어떻게 변모해왔는지 맥락이나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록 매체를 다루는 방법을, 특히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익혀야 합니다. 그래서 2023년부터 별관에서는 <도시를 기록하는 방법>이라는 교육과 기록 매체 사용 및 방법 학습을 위한 현장 워크숍을 진행해왔고, 2024년에는 시민 구술기록가 양성과정을 통해 14명의 구술기록가를 배출하기도 했습니다. ‘사소하지만 위대한 기록’이 모든 사람에 의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자 함입니다. 지난해 개최한 제1회 부산기록축제와 곧 열릴 <2024 기록, 부산>은 다양한 기록의 과정과 결과를 만나는 자리입니다. 무엇이든 자주 만나다 보면 가까워집니다.
지역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모두는 기록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지역의 역사는 물론 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