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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4호] #1. 다시 쓰는 역사 첫 번째: 어느 여대생의 일기 A Female University Student"s Diary, 1979~1980년

부서명
전시팀
전화번호
051-607-8043
작성자
이아름
작성일
2024-11-22
조회수
46
내용


#Ⅰ. 다시쓰는 역사 첫 번째: 어느 여대생의 일기 A Female University Student's Diary, 1979~1980년




부마민주항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 들어가다.




소요시간: 2분

글. 김선미 부산대학교 통일한국연구원 교수




 이 글은 1979년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한 여대생의 일기입니다. 일기를 쓴 여학생은 10월 16일과 17일 부산에서 항쟁에 참여했습니다.




그간 부산에서 여학생의 항쟁 참여는 소극적으로 인식됐습니다. 당시 대학생 가운데 여학생이 소수였고, 연행자 가운데도 여성은 소수였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글쓴이는 여학생의 시위 참여를 만류하는 교수를 향해 “말이나 될 법한 소리인가. 우리는 대학생이 아닌가”라고 항변합니다. 글쓴이는 16일 부산대 교내시위가 시작될 때부터 오후 늦게까지 도심에서 항쟁에 참여하고, 17일 오전 부산대 학생들의 장전동 시위와 오후의 도심 항쟁에 참여했습니다.


일기에는 시청 앞에 포진한 무장 군인의 모습, 남포동의 골목이 모두 시위대로 가득한 모습, 경찰 기동대의 최루탄 난사로 인한 고통, 시위가 벌어지기 전 피부로 느낄 정도로 팽팽해진 남포동의 초긴장 상태 등 도심항쟁의 여러 장면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부마민주항쟁에서 시민들의 성원, 독특한 시위 방식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글쓴이에 따르면 시민들은 “우리 시민들이 해야 할 말을 학생들이 해줘서 가슴 속이 후련하다”라고 격려하며 박수를 보냈고, 최루탄이 터질 때나 경찰에 쫓길 때 시위대를 숨겨주는 한편 기동대를 따돌렸으며, 시위대에 박카스D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사라졌다가 뒤에서 나타나는 시위 방식 역시 유명한 장면입니다. 이를 두고 보안사는 ‘베트콩식’이라며 배후를 의심했지만, 이는 시민들의 시위대 감싸기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경찰의 체포가 시작되면, 시위대는 주변 상인들의 도움으로 상점 등에 흩어져 숨었다가, 누군가의 신호에 달려 나와 다시 커다란 움직임을 만들었다는 일기의 내용은, 부마민주항쟁 참여자들 사이에서 쉽게 듣는 체험담이었습니다.




하지만 “여학생들이 더 용감했다”라는 것은 부마민주항쟁 관련 기록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경험담인데요. 실제로 글쓴이는 16일 부산시청 앞에 이르러 운동화를 구매하여 본격적인 항쟁 준비에 돌입하고, 17일에는 경찰의 색깔 물 살포 소문을 듣고 의상을 마련하고 손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고 집을 나서는 등 용의주도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록 글쓴이가 보편적인 사례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여학생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일기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일기는 부마민주항쟁을 겪은 학생의 심리 상태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처음 시위를 목격했을 때의 놀라움, 함께 노래를 부르며 흘린 눈물의 감동, 체증 사진에 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스크럼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의 일체감, 시위를 끝낸 뒤의 후련함과 뿌듯함 등을 격정적으로 토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위에 참여한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며 지면을 채우기도 하고, 항쟁에 대한 언론의 보도에 불만을 터트리기도 합니다. 이 일기는 박정희 정권을 겪지 못한 세대에게, 유신정권의 통제가 얼마나 큰 멍에였는지, 그 시절 젊은이가 겪었던 우울함의 무게를 얼마나 무거웠는지 실감하게 하는 좋은 교육적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