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근대역사관
#3. 사람 이야기 첫 번째: 동백아가씨를 재해석한 시대의 소리꾼 장사익을 만나다.
한 음절 한 음절에 온 정성을 다하다
대한민국 대중가요의 대표곡 ‘동백아가씨’는
딱 한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식 리메이크 되었는데요.
그 리메이크곡을 부른 가수이자 부산근현대역사관 홍보대사 장사익님을 만나
부산과 음악에 대한 진솔한 생각을 들어보았습니다.
소요시간: 5분
인터뷰. 장사익님
Q: 바쁘신 가운데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는 부산근현대역사관 홍보대사가 되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신지요?
A: 좋은 인연들 덕분에 홍보대사를 하게 됐지만, 단지 노래 부르는 가수인 저한테는 분에 넘친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영광인 일이죠. 더 책임감을 느끼고, 어떻게 하면 이곳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제가 부르는 노래가 하나의 방편이 돼서 이곳을 새롭게 보게 되는 계기가 되면 좋겠네요.
Q: 선생님에게 부산근현대역사관은 어떤 인상이었는지요?
A: 우선, 옛 건물을 개조해서 역사를 조명하는 곳을 만들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우리가 가까운 역사, 근현대의 역사에 관해 관심이 없는 편인데, 부산 시내 한복판에 부산근현대역사관이 생겨 사람들에게 근현대 역사를 알려준다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역사뿐만 아니라 문화를 다루는 곳이기도 하기에 저에게도 더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Q: 선생님께서는 대중가요 속에서 부산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시나요?
A: 일제강점기부터 부산은 오고 가는 배들을 통해 다양한 문화가 들어오는 곳이었잖아요. 그리고 피란 시절의 애환과 기록이 많이 쌓여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바닷가 사람의 팔딱거리고 거친 낭만이 묻어있는 곳이기도 하죠. 이 모든 시대의 서정과 낭만이 표출된 것이 곧 음악인데, 부산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는 곳이기에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출발지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대중가요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동백아가씨’가 발표 60주년 환갑을 맞이했습니다. ‘동백아가씨’는 선생님과도 인연이 깊은 곡인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동백아가씨’를 비롯한 대중가요가 가지는 가치란 무엇인가요?
A: 우리는 가요와 함께 살고 있어요. 가요는 우리의 애환을 위로해주지요. 의식주 그 이상의 가치가 가요에는 있습니다.대중음악 중에서도 백영호 선생님이 만드신 '동백아가씨'는 단연코 으뜸입니다. 1960년대 당시, 우리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는 노래였으니까요. 우리와 같이 울어주고, 우리의 마음을 풀어주는 그런 노래였어요. 그러니 당대 최고의 노래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회자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Q:. '동백아가씨'를 첫 리메이크하셨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와 어떻게 ‘동백아가씨’를 첫 리메이크 하게 되셨나요?
A: 제가 ‘동백아가씨’를 정말 좋아해서, 3집을 녹음할 때 한번 불러봤어요.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노래는 이미자 선생님 아니면 세상에 내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어떤 관례가 된 것 같았죠. 그래서 녹음한 걸 가지고 백영호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백영호 선생님께 큰절하고, 선생님의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전까지 이 노래를 무대에서 부른 사람은 있었지만 녹음을 한 사람은 없었어요. 감히 이미자 선생님의 노래를 어떻게 녹음하려 했겠어요. 저도 4시간 동안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 감사하게도 승낙을 해주셨어요. 그때부터 이 노래와 인연이 생겼습니다. 공연 때마다 제일 마지막에 이 노래를 불러요. 제 공연은 ‘동백아가씨'로 완성되죠. 부를 때마다 우리나라 가요 중에서 가장 완벽한 노래라는 생각이 들고, 백영호 선생님을 존경하게 됩니다.
Q: 이미자 선생님께서 부르신 '동백아가씨'와 장사익 선생님께서 부르신 '동백아가씨'는 다른 매력이 있는데요. 어떤 매력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A: 이미자 선생님은 가요에 충실하게 부르셨어요. 백영호 선생님이 생각하신 대로, 어쩌면 그 이상으로 아주 정확하고도 시대에 맞는 감성으로 부르셨죠. 백영호 선생님과 이미자 선생님의 시너지가 엄청났어요. '동백아가씨'는 가수와 작곡가가 이를 수 있는 경지를 보여주는 곡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그 뒤를 따라서 흉내만 냈을 뿐이죠. 저는 제 느낌과 감정을 넣어서 길게 늘어지는 폭포수처럼 풀어서 노래를 불렀어요. 동백꽃이 한 번 피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걸리잖아요. 눈 맞고 비바람 맞고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하죠. '동백아가씨'의 가사 중에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라는 구절이 있는 것처럼요. 그 힘든 시간을 견디며 겪었을 외롭고 서러운 감정을 노래에 많이 녹여내려고 했어요.
Q: '동백아가씨'를 들으면 마음이 뭉클한데요. 특히 가사가 굉장히 애절하잖아요. 선생님의 마음에 가장 와닿는 가사는 어떤 대목인가요?
A: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노래를 흥얼거리며)라는 가사가 있어요. 동백꽃이 떨어질 때 꽃이 머리부터 그냥 툭 하고 떨어지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고 꽃이 멍이 들었다고 표현한 것 같아요. 그리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아가씨”라는 가사를 보면 동백아가씨는 늘 기다려요. 늘 뒤에 서서 그리워하고 혼자서 삭히죠. 멍이 들면서도 기다리며 세월을 삭히는 서민들의 모습들을 동백꽃에 녹여낸 게 와닿는 부분이에요.
A: 음악은 한마디로 제 삶의 이유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노래를 늦게 시작했어요. 요즘 나오는 가수들은 어린 나이에 가수를 시작해요. 다들 잘생기고 춤도 잘 추죠. 이젠 다들 가수라고 하면 아이돌처럼 반짝거리는 존재라고만 생각해요. 그렇게 따지면 주름진 할아버지는 가수가 아닌 거죠. 하지만 사실 노래라는 것은 이야기예요. 레코드판이라고 할 때 레코드는 ‘기록’이라는 뜻이잖아요. 인생이 곧 기록이고, 노래라는 건 그때그때의 내 이야기를 기록하는 겁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가수들이 봄에 피는 꽃이라면, 저는 봄도 지나고 여름도 지나고 가을도 지나 서리가 내릴 때쯤 꽃을 피우는 국화꽃이나 동백꽃쯤 되지 않을까요? 진정으로 인생이 꽃피는 순간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이유를 찾을 때라고 생각해요. 제 꽃은 남들에 비하면 늦게 피었어요. 하지만 그만큼 노래를 부르는 일이 내 존재의 이유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되었답니다.
Q: 늦게 음악을 시작하셨는데, 데뷔 전까지 조바심이나 회의를 느끼신 적은 없으셨나요?
A: 제가 데뷔한 30년 전에 46세면 은퇴할 나이고, 그 나이에 가수 데뷔를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꿈이 많았던 것 같아요.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길을 찾는다고 하잖아요. 저는 창피하지만, 직장을 15번 옮겼어요. 25년간 직장을 옮겨 다니다가 어느덧 노래 부르는 일을 30년간 하고 있죠. 자신의 길을 찾는 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닙니다.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어야 하죠. 요즘은 시행착오를 겪는 사람이 없어요.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들이 너무 많이 발전해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시행착오를 충분히 겪으면서 제 모자란 점을 발견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는 힘과 긍정적인 사고를 기르게 됐어요. 그게 지금의 저를 있게 했고요. 꿈을 꾸는 사람들이 이런 시행착오를 겪고 이겨내면서 힘을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A: 저는 늘 제목을 붙이고 공연을 해요. 10주년 공연은 '10년에 하루', 20주년 공연은 '찔레꽃'이었죠. 이번 공연은 제목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한동안 연락이 없었던 황청원 시인에게 전화가 왔어요. 시를 3개 지었는데 한번 보시라면서. 그 시들을 보다가 눈에 띈 구절이 ‘꽃을 준다 나에게’였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꽃을 주며 축하하고 위로하며 살았는데, 내가 나에게 꽃을 준 적이 있었는가 하는 내용의 시였어요. 보자마자 이건 나의 이야기이고, 모두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이 구절에 영감을 받아 노래를 만들고, 공연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덧붙이자면, 누군가에게 꽃을 준다는 건 꽃을 주는 사람의 정성까지 받는 일이에요. 저를 위해 정성을 다해 주었던 주변 사람들과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분들의 정성 때문에 제가 30년이나 음악을 해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Q: 웹진을 보는 젊은 독자 중에는 선생님의 이름은 들어봤어도 선생님의 음악은 잘 모르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선생님을 스스로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A: 나이 드신 분들은 나이 든 노래만 듣고, 젊은 사람들은 젊은 노래만 듣게 되죠. 취향이 다 있을 거니까요. (함박웃음) 물론 저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음악을 하고 있어요. 어쩌면 그게 제 음악이 가진 생명력일지도 모르죠. 음악을 비롯한 예술은 무한대고, 정답이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음악을 듣든 그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듣기 전보다 세상의 폭이 넓어집니다. 그래서 저도 다양한 음악을 들어보려고 노력해요. 젊은 사람들도 다양한 음악을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음악에 대한 시야뿐만 아니라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질 겁니다.
Q: 선생님은 대중에게 어떤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A: 사람들에게 바라기 전에 저부터 노래에 충실해야겠다고 느낍니다. 제가 노래를 가볍게 부르면 대중도 가볍게 들어주고, 무겁게 하면 무겁게 들어줘요.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요. 평소와 똑같은 노래라도 내가 정성을 들이면 사람들이 가사 하나하나를 다 정성스럽게 들어줍니다. 한 곡을 불러도 온몸을 다 바쳐서 정성스럽게 부르고 싶어요. 가사의 단어 하나하나가 그냥 흘러가지 않고 마음속에 콕콕 박혀서 배기도록 하고 싶습니다. 대중음악이 사람들에게 위로와 반성, 희열을 갖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생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A: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노래를 했습니다. 좀 있으면 나도 여든이 되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노래하고 싶어요. 늙어서 지팡이를 짚고 거친 목소리로 노래를 하더라도 끝까지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 그게 진정한 소리꾼이 아니겠습니까.
10월 14일에 진행될 특별기획전 <동백아가씨> 개막공연의 선생님의 무대를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