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근대역사관
#3. 공간 이야기 두 번째: 천천히 음악을 마시는 공간 부산의 뮤직바
신청곡을 기다리는 낭만들이 돌아온 공간
소요시간: 3분
인터뷰. 최승은 작가
독자분들은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감상하시나요? 아마도 많은 분이 스마트폰에 있는 스트리밍 어플을 사용하시겠지만, CD플레이어나 LP를 통해 음악을 즐기시는 분들도 적지 않으실 겁니다. 요즘은 음악을 감상하는 방식에도 ‘뉴트로(Newtro)’의 바람이 불고 있으니까요.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풍(Retro)’의 합성어로 젊은 층 사이에서 복고풍이 새롭게 유행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과거의 문화가 새롭게 해석되어 요즘의 문화로 재탄생 되는 것이죠.
1970-80년대에 유행한 음악다방에서는 DJ에게 원하는 곡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감상했었는데요. 자신의 신청곡이 언제 나올까 기대하며 기다리는 동안 다른 사람의 신청곡을 함께 듣는 낭만이 있었습니다. 이 낭만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공간들이 요즘 생겨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특색있는 공간 3곳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우선, 음악다방의 중심지였던 남포동으로 가볼까요. 광복로에 있는 건물 3층에 위치한 ‘공실’은 치열한 도심 속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휴양지를 추구하는 공간입니다. 앤티크한 분위기에 식물을 활용한 인테리어가 특징인 이곳은 커다란 스크린과 하이엔드 스피커를 통해 신청곡을 감상하기 좋은 본관, 도란도란 모여 앉아 차분히 대화 나누기 좋은 별관으로 공간이 나누어져 있어요. 주문과 신청곡을 인스타그램 DM으로 받는 점이 특이했는데요. 음향에 신경을 많이 쓴 공간인 만큼 벨소리를 사용한 주문 방식은 음악 감상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스타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분들은 편하게 말로 주문하면 되고요.
젊은 층들이 많이 찾는 전포동으로 발걸음을 옮겨봅시다. 건물 사이의 골목길에 붙은 이정표를 따라 계단을 오르면 ‘슘 레코드’를 만날 수 있어요. 낮에는 카페 겸 레코드샵으로, 밤에는 뮤직바로 운영되는 이곳은 거부감 없고 자연스러운 매력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들어서자마자 중앙에 있는 턴테이블이 시선을 사로잡고, 다양한 가구들로 자유롭게 배치된 좌석들이 편안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줍니다. 한쪽에는 빈티지 옷들이 걸려있었는데요. 실제로 판매 중인 옷들이라고 해요. 이뿐만 아니라 이곳은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공간으로도 활용되는데요. 플리마켓과 원데이클래스, 디제잉 공연을 열기도 하고, 한 달에 한두 번은 LP만을 이용해 음악을 즐기는 파티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주로 테크 하우스나 블랙 뮤직 장르의 곡을 다룬다고 하는데요.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유니크한 두 음악 장르처럼 이곳의 공간 역시 그렇게 느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합니다. 테이블에 있는 종이에 신청곡을 써내면 원하는 음악도 들을 수 있어요. 음악에 제한을 두지 않기 위해 LP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을 틀고 있고, 선명하고 좋은 음질을 위해 음향 장비에도 공을 들였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말소리와 음악이 자연스럽고 편하게 어우러진다고 느꼈습니다. 이곳의 자연스러운 분위기에 맞게 메뉴도 가벼운 맥주나 칵테일이 인기였는데요. 칵테일 중에서 위스키와 소다를 믹스한 ‘위스키 스타’는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아 이곳의 음악과도 잘 어울리는 메뉴라고 합니다.
요즘 떠오르고 있는 핫플레이스인 광안종합시장 근처로 가볼까요. 분위기 좋은 카페와 식당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는 이곳에 ‘구프 레코드’가 있습니다. 이곳은 친구들과의 모임이 끝나고 무언가 아쉬울 때, 혼자 음악을 들으면서 한잔할 수 있는 공간을 떠올리며 시작한 공간이라고 해요. 13명 남짓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지만, 따뜻한 색감의 인테리어와 귀여운 강아지 뚜시가 주는 아늑한 느낌 덕에 답답하지 않았습니다.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라 혼자서도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분위기였어요.
무엇보다도 이곳은 LP로만 음악을 튼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인데요. LP만이 가진 사운드를 느끼며, 음악에 대해 좀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해요. 앰프와 스피커, 턴테이블의 시너지로 만들어진 음질은 아무래도 스트리밍으로는 느낄 수 없으니까요.
이곳은 재즈, 알앤비, 힙합 장르를 비롯해 다양한 음악 장르를 다루고 있는데요. 신청곡 역시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고 공간에 어울리는 음악을 위주로 틀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의 공간과 잘 어울리는 음악으로는 라비나(Raveena)의 <Lucid> 앨범과 바히리(Baharie)의 <Are you there, Boy?> 앨범을 추천한다고 해요. 편안하고 따뜻한 음악이 흐르는 이곳의 분위기에는 상큼한 ‘패션후르츠 다이키리’와 달콤한 ‘정글버드’가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바질과 진의 조합인 칵테일 ‘바질 스매시’도 인기가 많습니다.
언제든 쉽고 빠르게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요즘이지만, 어쩌면 편안함에 기대어 음악 취향마저 알고리즘이 정해주도록 내버려 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쳇바퀴 같은 일상의 탈출구였던 음악마저 알고리즘의 쳇바퀴를 돌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요. 단조로운 일상에 음악마저 뻔하기만 하면 너무 지치잖아요. 우리의 일상에 새로운 배경음악이 필요할 때, 편안한 공간에서 천천히 음악을 느낄 수 있는 부산의 뮤직바를 한번 찾아가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