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근대역사관
3. 사람 이야기 두 번째: 80~90년대 다방의 진화
0832 호출 하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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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목지수 싸이트브랜딩 대표, 집앞목욕탕 발행인
<사진삽입>
1980년대를 지나면서 다방과 커피숍, 전통 찻집이 구분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의 세분화, 다시 말해 일반적인 ‘대중(大衆)’에서 취향별로 구분되는 ‘분중(分衆)’으로의 전환이 시작된 것이죠. 1980년대 말 나의 중고등학생 시절은 어른들을 따라 ‘다방’에, 운동권 대학생이 된 선배들을 따라 ‘전통 찻집’에, 친구들과 함께 ‘커피숍’에 드나드는 비자발적 취향이 생성된 시기였습니다.
부산에도 마리포사로 대표되는 서면, 남포동과 광안리, 부산대와 경성대 앞 대학가에 커피숍이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반짝반짝한 모던인테리어와 식감 좋은 다양한 메뉴(헤이즐넛과 파르페의 등장)는 물론이고, 멋진 유니폼을 입고 서빙 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커피숍의 아이콘이었죠.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이른바 ‘삐삐’의 등장이었습니다. 당시 삐삐는 지금의 스마트폰 혁명에 버금가는 세기적 사건이었는데요. 티피코시, 옴파로스 남방에 캘빈 클라인, 게스, 빅존의 가짜 브랜드 청바지를 입은 신세대들의 허리춤에는 삐삐가 장착되어있었죠. 삐삐는 90년대 초반 청춘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물론이고, 커피숍의 역할을 재정의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0832 호출하신 분! ….
안 계세요? 0832, 0832 호출하신 손님!
아, 여기! 전화 받아보세요!”
삐삐는 호출을 한 후 기다렸다가 연락을 받을 수 있는 전화가 반드시 있어야 했어요. 이 기능을 담당해 준 공간이 바로 커피숍이었던 겁니다. 당시 커피숍의 매니저들은 정말 바빴다고 해요. 바쁜 주방을 대신해 주문받은 파르페에 아이스크림을 올리고 빼빼로를 정성껏 꽂아야 했고, 주문 접수는 물론이고 성냥을 달라고 하는 손님들에게 커피숍의 로고가 찍힌 성냥이나 라이터를 갖다 드려야 했죠(당시 커피숍은 담배 연기가 자욱했어요.). 게다가 손님들의 삐삐 호출 전화를 대신 받아서 수화기를 건네는 역할까지 도맡아야 했습니다. 제법 규모가 큰 커피숍에는 마이크까지 설치되어 있을 정도였죠. 삐삐의 출현은 커피숍이 커피나 음료를 마시는 공간에서 네트워크와 커뮤니티의 공간으로 진화하는 시간이었고, 이에 따라 서비스의 고도화도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없고, 인터넷이 없던 시대. 케이블 TV가 개국 되기 전이라 고작해야 공중파 채널 3개가 전부였던 시대. 청춘들은 재미를 찾아 만화방과 당구장, 커피숍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커피숍에는 ‘쎄씨’, ‘에꼴’, ‘씬디더퍼키’ 등 패션 잡지들을 비치해 놓아, 트렌드를 놓치고 싶지 않은 신세대들이 커피숍으로 찾아왔죠.
물론 커피의 진화도 빼놓을 수 없죠. 커피의 맛은 점점 고급스러워지고 깔끔해졌습니다. 전국적으로도 유명했던 커피 프랜차이즈였던 ‘가비방’이 1982년 부산대학교 앞에서 1호점으로 영업을 시작했고, 전국에 47개의 매장이 생길 만큼 젊은이들의 커피 취향을 바꾸어 놓았어요. 따뜻한 조명과 화이트와 갈색 우드톤이 잘 어울리는 정갈한 인테리어는 가비방을 찾는 사람들에게 커피 한 잔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차분히 마시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켰죠. 커피가 ‘문화’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부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