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근대역사관
3. 사람 이야기 첫 번째: 70~80년대 다방의 진화
한때 우리는 음악을 마시던 낭만의 방랑자였다.
기사읽는 소요시간: 3분
글. 前부산MBC PD 및 클래식음악 해설가 김옥균
음악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무형의 예술입니다. 연주하는 순간 우주 공간으로 흩어져 버리죠, 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음악은 계속 남아 있습니다. 음악을 들었던 장소에 추억까지 깃들어 있다면 그 곡은 더 특별해지겠죠. 음악다방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 부산에 음악다방이 있었던 곳은 남포동과 광복동 일대, 그리고 서면이었습니다. 제가 자주 가던 음악다방들을 한 번 떠올려 보았는데요. 우선 남포동과 광복동 일대부터 돌아볼까요.
창선동 우체국 옆 골목에는 제일 큰 음악다방인 황금 다방이 있었어요. MBC 방송사에서 공개방송을 하는 등 크고 유명해서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가서 음악을 듣곤 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 주는 다방인 전원 다방은 남포동의 호프집 건물 2층에 있었는데, 74학번인 제가 ‘음대생 배지’를 달고 클래식 음악 DJ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커피를 마시는 손님이 쪽지로 모차르트, 베토벤 교향곡이나 협주곡을 신청하면 LP로 곡을 틀어 줬어요. 뮤직 박스 밖에 있는 작은 검정 칠판에 하얀 분필로 클래식 음악 제목을 적어두며 클래식 음악을 전파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광복동 입구에는 무아 음악 감상실이 있었는데, 이곳은 음악다방이 아닌 입장료를 받았던 전문 음악 감상실이었죠. 전문 DJ가 활약했고 그 중 인기 DJ는 방송국으로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광복동에서 용두산공원 쪽으로 올라가면 용두산공원 꼭대기에 타워 다방(일명 팔각정 다방)이 있었는데, 다방과 음악 감상실을 절충한 형식의 다방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영상 음악을 내보내던 곳이기도 하죠. 지금은 일흔을 넘은 연세이지만 당시 30대 초반의 인기 DJ 한강진씨가 (사진 속 주인공, KBS, MBC 방송사를 거쳐 최근까지 TBN 교통방송의 DJ) 일본에서 처음 개발한 베타 맥스를 이용하여 대형 TV 브라운관에 사연과 함께 팝송 음악 영상을 틀어 주었습니다. 그때가 1975년이었고, 1990년대에 문을 닫을 때까지 손님이 아주 많았답니다. 당시 팔각정 음악다방 커피값은 150원으로 130원인 다른 다방보다는 조금 비싼 편이었는데요. 요즘 말하는 고급 카페였던 셈입니다. 광복동에서 서면으로 발걸음을 옮겨 볼까요. 서면에 있는 부전궁 음악 다방은 방송인이자 유명 DJ(디스크자키)인 이종환씨가 서울의 라이브 카페 인기가수들을 한 달에 한 번 데리고 내려와서 라이브콘서트를 할 만큼 제법 큰 음악다방이었습니다. 서면을 대표하는 음악다방이었죠.
현재 쥬디스태화(옛 태화 백화점) 부근, 대한 극장이 있었던 극장 지하에는 대한 다방이 있었는데, 이곳 역시 서면 지역의 젊은이들이 자주 모였던 음악다방이었습니다. 서면 로터리 부근에는 중앙 다방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유선 중앙 음악방송’을 내세워 음악다방과 유선 방송을 겸하는 이색적인 형태로 다방을 경영했어요. 다방 안에 있는 DJ 뮤직 박스가 ‘유선 중앙 음악방송’의 메인 스튜디오 역할을 했습니다. 손님들의 음악 신청도 받아주면서, 다른 다방이나 미용실, 유흥업소 등 뮤직 박스를 둘 수 없는 업소에 유선으로 음악을 보내주었습니다. 여러 양장점과 제과점도 온종일 그 유선 중앙 방송에서 보내주는 음악을 틀고 고객을 맞이했죠. 한 달에 일정 금액을 내고 유선 방송으로 송출된 음악을 듣는 방식은 가히 독보적이었습니다. 지금의 ’케이블 유선 방송‘의 모태가 된 셈이니까요. 당시 음악다방에서 인기 있던 신청 곡은 엘비스 프레슬리, 비지스, 비틀즈의 팝송이었는데, 해설을 곁들여 주기도 했습니다. 패티 킴, 송창식, 트윈폴리오, 히 파이브의 ’초원‘이나 트리 포스 밴드의 ’옛님‘같은 노래들도 팝송과 더불어 꽤 인기가 있었던 음악다방의 신청 곡이었어요.
음악다방이 성행하던 시기에는 한 집 건너 한 집 정도로 음악다방이 정말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5공화국 시절에 들어서며 음악다방도 사양길에 접어들기 시작했는데요. 임대료와 인건비의 상승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더 많지만, 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지금의 60~80대분들은 이 글만으로도 그 시절 음악다방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추억이 기쁨과 행복이 되길 바라며 이야기를 끝내도록 할게요.
“음악은 시간적 경험이므로 그것이 연주될 때만 존재할 수 있다.” -지젤 브를레-
“음악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기에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 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