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근대역사관
#3. 사람 이야기 두 번째: 사라진 건축물을 그리는 건축가가 바라본 부산의 근대 건축물
부산 근대 건축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소요시간: 2분
글. 최윤식 문화골목 대표 및 건축가
세계열강의 야욕이 정당화되던 19세기의 제국주의, 일본도 아시아 대륙진출을 계획했습니다. 1876년에 맺은 강화도 조약에 의해 1896년 개항된 부산항이 그 시작이었어요. 대륙진출의 교두보로써 도시의 면모를 갖춰야 했던 부산에는 해안의 매축, 항만축조, 도로와 철도의 건설이 이루어졌고, 관공서와 은행, 학교뿐만 아니라 신사나 유흥 시설을 비롯한 여러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규모 있는 건물은 대부분 당시 유럽에서 수입한 르네상스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이후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어 조선에 영원히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일본인들이 이주해오면서, 그들이 거주하기 위한 주택과 음식점, 시장과 같은 상업용 건물들 또한 많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부산은 나름대로 도시의 틀을 갖추게 되었지만, 해방 이후 귀국한 동포들과 6.25 전쟁으로 인해 과대한 인구가 연이어 집중되면서 기존의 건물과 부지로는 그 용도와 형태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도시의 확장은 불가피했고 그 과정에서 부산은 많은 파괴와 변화를 겪었는데요. 이후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통해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거듭난 부산이지만, 그 이면에는 현대로의 도약을 위해 사라져간 오래된 도시의 모습과 많은 근대 건축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몇 안 되는 남아있던 건물들의 보존 가치가 알려지고, 도심 재생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공간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심지어 요즘에는 건축으로서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창고들도 문화를 입힌 공간으로 재탄생하여 MZ세대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
이런 재생을 소재로 한 문화공간들이 생겨나는 것은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추세이자, 수십 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일어난 현상입니다. 역사성이 있는 도시들은 오래된 공간들을 잘 되살려 많은 관광객이 즐겨 찾는 명소로 활용합니다. 도시를 찾는 사람들도 풍광만을 즐기는 것보다는 도심 속 색다른 명소에 더 열광하지요. 경치가 좋은 명소는 낮 시간대 위주로 관광이 이루어지지만, 도심 재생의 명소는 야경과 함께 볼 수도 있으며, 접근성이 좋고 상업성이 높아 관광 측면에서도 유리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부산을 좀 더 톺아봅시다. 용두산을 중심으로 왜관과 여러 일제 강점기 건축물들이 자리 잡았던 중앙동, 광복동, 남포동 등 구도심 일대에는 그나마 몇 안 되는 근대 건축물이 남아있는데, 그 중심에 근현대 역사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일대는 사신을 맞이하던 연대청(宴大廳)이 있어서 대청정거리라 불리다가 대청로로 불리는 오래된 거리입니다. 길을 따라 일본식 가옥과 요릿집이 즐비했고 전차도 다녔었지요.
우선, 새로 출범한 근현대역사관의 건물을 살펴봅시다. 본관은 조선은행 부산지점이 있던 자리였으나 원래 건물은 없어지고 1964년에 들어선 한국은행 부산지점 건물입니다. 그동안 여러 논의가 많았음에도 다행히 철거되지 않고 역사관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죠. 분관은 동양척식 주식회사로 시작해 미문화원 등을 거쳐 근현대 역사관으로 이어져 오는 건물로 부산 사람들에겐 꽤 친숙한 편입니다.
지금의 근현대 역사관 주위에는 어떤 건물이 있었을까요? 1953년 부산역 대화재 때 사라진 부산역과 부산 우편국 그리고 1979년 도로 건설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철거된 부산 세관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남아있는 건물로는 흔적만 남은 한성은행이었던 한성1918, 자리만 남은 독립운동가 안희제 선생의 백산상회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백산기념관, 6.25 전쟁을 겪으며 유명해진 40계단과 최근 중구문화원으로 개관한 타테이시 주택, 2024년 축성 100주년을 맞은 성공회 성당 등이 가까운 거리에 있습니다. 이 건물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 번쯤 돌아봐야 할 역사이자, 교육적으로도 아주 좋은 소재가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건축을 전공한 필자의 이야기를 얘기해 보자면,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부산 사람으로 새로 짓는 데는 관심이 없고 평생 리모델링 디자인과 도심 재생에만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오랜 세월 노력해 온 한 사람으로, 사라진 부산의 근대 건축물들과 남아있는 건물들, 거리를 스케치로 남기는 작업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좀 더 나아가 원도심 지도를 만들고, 옛날 건물이 있던 자리에 그 스케치를 올려놓고 직접 그 위치에서 그림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아직 상상이긴 하지만, 프로그램에 게임이나 AI를 이용한 가상현실을 덧붙인다면 젊은 층의 관심과 수요를 더욱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늙어가고 있는 부산은 북항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북항이 부산의 미래라고 하면 원도심은 부산의 과거가 됩니다. 북항과 원도심은 결코 많이 먼 거리가 아닙니다. 이야기만 있으면 도란도란 걸어올 수 있는 거리죠. 부산의 미래와 과거가 서로 잘 어우러진다면 ‘노인과 바다’라는 오명 대신 ‘사람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모습으로 현재의 위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가 없는 현재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래된 것이 낡은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은 것이 낡은 것이다.’라는 저의 지론이 모두가 하찮은 옛것이라도 소중히 여기는 생각을 하는 데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