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근대역사관
#3. 사람 이야기 두 번째: 현재의 기록
1998년 개봉작 중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영화가 있다.
사랑에 대한 남녀 주인공의 상반되는 관점을 미술관과 동물원으로 표현한 것인데,
실제로도 ‘다양한 기능을 하는 공간들이 서로 인접해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런 일이 현실이 된 곳 생겼다. 역사관 속에 자리 잡은 미술관.
그 특별한 동거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는 역사관의 미술 큐레이터, 이창훈 주무관을 만났다.
기사 읽는 시간: 3분
인터뷰. 이창훈
정 리. 최승은
Q: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저는 부산근현대역사관 금고미술관을 담당하고 있는 이창훈이라고 합니다. 전시를 기획하고, 공간을 마련하고, 작가를 섭외하고, 전시를 홍보하는 등 모든 일을 총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보시면 됩니다.
Q: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가 부산근현대역사관 금고미술관으로 탈바꿈되었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바뀌게 되었나요?
A: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의 운영에 대해서 여러 논의 방향이 있었는데, 처음엔 박물관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나중엔 박물관보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올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방향이 바뀌게 되었어요. 처음에 지하금고는 박물관 수장고로 쓰일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논의 중에 자문위원 분 중 한 분이 지하금고에서 미술 전시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어요. 그 제안을 부산시에서 받아들여 지하금고를 미술 전시 공간으로 계획했고, 담당자를 채용해서 제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Q: 역사관이라는 공간 안에서 현대 미술 전시를 기획하는 일은 어떤가요?
A: 물론 힘든 일입니다. 역사관 안에 미술관이 있는 건 최초라고 알고 있어요. 저는 공공미술에 관심이 많았어요. 특권의 소수만 예술을 즐기는 게 아니라 누구나 편하게 다가서고 이해할 수 있는 예술, 미술을 보여주고 싶었죠. 많은 사람이 현대 미술을 모호하고 난해하다고 느끼지만, 저처럼 전시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조금만 잘 잡아주면 좀 더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박물관 안에서 미술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현대 미술을 보다 편안하게 사람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곳에 오게 됐습니다. 실제로 역사라는 큰 틀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미술이라는 게 크게 보면 공공미술의 한 부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Q: 금고미술관의 본래 명칭은 ‘지하금고’였지요? 지하금고에 대한 업무를 처음 맡게 되었을 때 마음가짐은 어땠나요?
A: 지하금고는 한국은행 부산본부에서 가장 은행의 기능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공간이라 아무래도 부담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처음에는 지하금고를 미술관으로 쓸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에 계획이 바뀌고 나서 도중에 제가 긴급하게 투입된 상황이었어요. 짧은 기간 안에 사업비 확보, 설계, 시공, 전시 모든 것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거의 잠 못 자고 준비했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핸드폰을 잃어버리기도 했어요. 그것도 두 번이나요. 불면증이라는 것도 처음 느꼈습니다. 부담감에 잠이 오지 않아 하루에 2시간씩 자는 걸 거의 한 달 넘게 지속했어요.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도 잘 마무리된 것 같아요. 진짜 많이 보러 오셨고요.
Q: 개관 후 첫 전시였던 <가장 가깝고 가장 은밀한 역사>가 5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모으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시반응을 보고소감이 어떠셨나요?
A: 고생한 만큼 반응이 좋아서 정말 뿌듯했던 경험이었어요. 제가 지금껏 했던 전시 중에 가장 많이 보러 오셨습니다. ‘부산에서도 이런 전시가 있네’라는 말을 실제로도 많이 들어서 앞으로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더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고요. 지금까지 열심히 해왔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반응이 나온 건 처음이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다른 지역에서 부산에 놀러 왔을 때 자연스레 ‘금고미술관에 가 보자’라는 말이 나오도록, 부산의 원도심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Q: <가장 가깝고 가장 은밀한 역사>는 부산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로 채워졌는데요. 어떤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전시를 준비하셨나요?
A: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부산하면 대부분 해운대, 광안리만 생각하는데 바다만이 부산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살았던 사하구는 낙동강을 끼고 있는 동네입니다. 부산은 산과 강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곳이에요. 저는 시선이 닿지 않는 부산의 곳곳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지만 사실 우리 눈앞에 있었던 그런 부산의 모습 말이죠. 그것이 진짜 우리 코앞에 있는 역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과서에 있는 것만이 역사는 아니니까요. 미술이라는 중간 매개체를 통해서 역사를 이야기한다면 많은 사람이 역사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예술가들이 표현하는 작은 하나하나 작품들이 우리의 가장 가까운 역사이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라는 생각으로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Q: 앞에서 언급한 첫 전시는 특히 금고미술관의 개관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A: 1963년에 준공을 하고 1971년에 확충을 한 한국은행 부산본부의 지하금고는 굉장히 큽니다. 임시수도였던 시기에 많은 사람이 몰렸고 급격한 경제 호황을 누렸던 부산을 잘 보여주는 가장가까웠던 역사의 건물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일반인들이 단 한 번도 들어가지 못한 건물이라 은밀했던 역사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가장 가깝고 가장 은밀한 역사’라는 말 자체가 지하금고가 가지고 있던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전시 주제로 잡은 것이었죠.
Q: 5월부터 금고미술관에서 새로운 전시가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원도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단순히 원도심이 주제라 하여 과거의 것만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원도심의 색채를 재해석하고 싶었어요. 색채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대부분 색깔을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색채의 사전적 의미는 첫 번째가 색깔이고, 두 번째는 사물의 경향이나 성질입니다. 원도심을 주제로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색채’는색깔이 될 수도 있고 경향이나 성질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과거를 재해석한 현재의 작품은 미래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원도심이 오래된 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미래적인 가치도 갖고 있어요. 과거의 원도심에서 회화, 조각, 건축, 무용, 사진 등 다양한 예술을 했던 분들이 다시 원도심을 회상해서 예술로 보여주는 전시가 될 겁니다. 5월 28일에 전시가시작되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Q: 앞으로 금고미술관 기획자이자 운영자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으신가요?
A: 저는 미술관에서도 박물관에서도 할 수 없는 중간 단계의 역할을 해내고 싶습니다.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전시를 하고 싶어요. 근현대역사관이라는 틀 안에 있으니 전시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내용은 부산과 부산 청년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청년들이 앞으로의 역사를 이끌 수 있는 힘이 될테니까요. 저도 청년과 중년의 경계선에 있는 사람이니, 예술로 잘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역사를 기반으로 해서 현재의 작가들이 앞으로를 보여주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창훈 주무님에게 금고 미술관이란?
A: 한국은행 부산본부 지하금고가 가장 가깝고 은밀했던 역사였다면, 저에게는 앞으로의 우리를 만들어 갈 공간이자 앞으로의 원도심을 보여줄 수 있는 자산 같은 존재입니다.
인터뷰어: 최승은은 부경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였고, 현재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