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는 구포시장과 가까운 곳이라 운동 혹은 장보기를 목적으로 시장에 가곤 한다. 길 옆으로 보이는 낙동강, 구포의 여러 모습은 어느새 눈과 발에 익었다. 자연스레 일제강점기인 1928년을 배경으로 한 내 소설에도 구포를 등장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작중 인물이 구포시장에서 국수를 먹는 장면을 스케치해 보았다. 구포라는 지명을 들으면 구포국수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고, 나 역시 구포에서 국수 먹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료를 조사하면서 그 장면을 지워야 했다. ‘일제강점기에 구포국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라는 정보는 맞았지만, 시작은 배경으로 삼았던 1928년보다 뒷 시기여야 정확할 것 같았다. 결국 소설에서 구포국수가 나오는 장면은 사라졌다. 하지만 구포국수에 얽힌 자세한 역사를 알고 싶다는 궁금증은 커졌다.
왜 구포는 국수로 유명해진 걸까? 구포 사람들은 언제부터 국수를 만들어 먹었을까?
제분·제면 공장의 성업이 구포국수를 탄생시키다
‘구포국수’는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일대에서 생산되는 국수를 일컫는다.
구포는 조선시대 낙동강의 3대 나루로 꼽힐 만큼 물류의 요충지였다. 조운선이 이곳에서 세곡을 싣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 한양으로 가곤 했다. 쌀의 취급량이 많다 보니 자연스레 정미업이 발달했다. 하지만 구포 근방은 밀이 널리 재배되지 않았기에 제분업이 발달하지는 않았다.
구포에 제분업이 형성된 건 1905년이다.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황해도의 밀이 구포까지 운송되고, 일제강점기 때 조선 여기저기 제분소가 세워지는 와중 구포역 일대에도 여러 제분소와 제면소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때까지의 제면 시설은 인력을 동원하는 전통적 방식의 개량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구포에 현대식 자동 설비를 갖춘 제분·제면 공장이 세워진 건 1941년, 오명구(吳命九, 1916∼1962)가 세운 ‘남선곡산’이 최초이다. 이곳을 구포국수 공장의 시초라는 견해가 있으니, 구포국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역사를 이때로 잡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해방 이후 국수를 생산하는 업체가 늘어났다. 구포시장 일대에 ‘거북제면소’, ‘김봉옥 제면소’, ‘구일제면’ 같은 국수 공장들이 속속 들어섰다. 지명에 거북 구(龜) 자가 들어가기에 공장 이름에도 거북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전쟁 피란민들의 음식, 전국에 알려지다
구포국수의 맛이 전국으로 널리 알려진 건 한국전쟁 시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피란민들의 궁핍한 사정에, 미군의 보급물자 중 하나였던 밀가루로 뽑아낸 국수는 값싸고 훌륭한 식량이 되어 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구포의 여러 제면공장은 미국이 공급한 밀가루로 국수를 생산한다. 이 국수는 구포 지역과 부산을 넘어, 경부선 철도를 따라 경상도 일대와 전국 여기저기로 퍼져 나간다.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찍은 사진. 한국전쟁 당시 보급받은 밀가루를 재현한 전시품이다.>ⓒ무경
먹을 것이 부족한 전쟁 시기에는 그 어떤 음식도 감사할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당시에 허기를 채우려 먹던 음식을 찾는다면, 그건 그 음식만이 가진 특별함이 있어서일 것이다. 구포국수가 단순히 굶주렸기에 먹은 식량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맛있는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포국수의 면은 특유의 짭짤한 맛 때문에 그냥 삶아 먹는 것만으로도 밍밍하지 않다. 이는 구포의 지리적 특색 때문이다. 낙동강하구둑이 세워지기 전의 구포는 그 옆 낙동강까지 바닷물이 흘러들어왔기에 소금기 머금은 공기가 가득했다. 일조량이 많고 시랑골의 깨끗한 물이 있어 국수를 반죽하고 건조하기 좋은 지역이었다. 여기에 낙동강의 소금내음이 더해지면서 구포국수는 이곳만의 맛 좋은 짭짤함을 지니게 되었다.
구포국수는 건면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 면으로 만들어낸 음식을 가리키기도 한다. 구포지역의 국수는 바다에서 잡히는 디포리나 멸치로 육수를 진하게 우려낸 강렬한 맛이 특색이며, 고명 또한 다른 지역의 잔치국수와 달리 부추와 김가루, 단무지 등이 올라간다. 국수 한 그릇에 구포와 부산이라는 지역의 특색을 꾹꾹 눌러 푸짐하게 담아낸 것이다.
<냉국수와 비빔국수. 부산의 국수에서는 잘게 썬 단무지와 김가루 고명 등이 보인다. 이 고명의 차이 또한 다른 지역의 국수와 다른 점이다.> ⓒ무경
구포국수는 지리적 표시제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특정 지명이 특정 상품을 대표하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아 유명 브랜드가 된 최초의 사례이다.
구포시장 일대에 국수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자 1959년 10월, 20여 개 국수 공장들이 상권 확대와 권익 보호를 위해 ‘구포건면생산조합’을 결성했다. 구포건면생산조합은 ‘구포건면(龜浦乾麵)’이라는 상표를 등록했고, 국수 띠지에 ‘거북표’, ‘잉어표’, ‘인삼표’ 같은 브랜드를 붙였다. 구포에서 생산된 국수가 다른 지역의 국수와 다른 제품이라는 걸 보이려는 의도였다. 또한 구포건면생산조합은 국수의 면발 굵기에 따라 번호를 매겨 규격화하면서 제품을 높은 품질로 관리해 나갔다.
한때 구포지역 국수 공장들 모두 거북이 모양이 들어간 ‘거북표’ 상표를 썼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구포국수’라는 명칭과 ‘거북표’ 상표가 독점 가능한지를 두고 논쟁이 일어났다. 결국 1989년 9월, 대법원에서 ‘구포라는 특정 지명은 특정 업체가 독점할 수 없고, 대신 거북표에 대한 권리는 한 업체만 쓸 수 있다’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마무리되었다. 이때의 논쟁이 언론을 타고 알려지면서 지역명과 음식명이 결합한 ‘구포국수’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는 견해가 있다.
<‘한 국수 집에서 상품으로 판매 중인 건국수. 다양한 종류의 국수를 판매하고 있다.> ⓒ무경
구포국수의 인기는 저물어가듯 보여도
1990년대 이후 구포국수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식문화의 변화로 사람들이 다양한 먹거리를 접하면서 국수를 찾는 이가 줄어든 탓이 클 것이다. 땅값과 영업 난항 등의 문제 때문에 한때 30여 곳에 달했던 국수 공장들이 구포를 떠났다. 현재 구포에 국수공장은 구포연합식품 단 한 곳이 남았다. 구포연합식품은 4대째 구포국수의 맥을 잇고 있으며, 1990년 초부터 구포국수에 ‘인삼표’를 붙여 팔고 있다.
한편 구포를 떠난 업체들은 김해와 양산, 합천 등지로 공장을 옮겨 영업을 지속하고 있다. 이들도 대부분 구포국수라는 명칭과 로고를 사용하고 있다. 지리적 표시제에 익숙한 요즘 눈으로는 무분별한 사용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본다면 이들의 국수 또한 구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의미를 그렇게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구포국수가 가진 명성을 활용하려 지자체와 민간 단체가 여러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11년 구포국수영농협동조합이 발족되었고, 2012년 말 부산 북구와 함께 구포국수에 대한 지리적 단체표장 등록을 출원해 2014년 3월 등록을 완료했다. 이는 원칙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구포국수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상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됨을 뜻한다.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은 상품의 명성과 특성이 특정 지역에서 비롯된 경우 해당 상품의 생산·제조·가공을 업으로 하는 이들이 구성한 법인 또는 소속 단체원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상표이다.)
또한 부산 북구는 2016년 12월 23일 구포역 일대 만세길에 구포국수 체험관을 열었고, 2021년 2월에 ‘밀 전문 종합체험관’으로 새롭게 개편했다. 또한 북구에서는 화명생태공원에서 밀을 심어 수확하는 행사 등을 개최했으며, 구포라는 지역명을 브랜드로 삼아 밀로 맥주와 다양한 음식을 개발하려는 시도 또한 있었다.
국수라는 음식 하나를 넘어서 밀 전반에 걸친 특성화를 꾀하려는 이러한 지역 사회의 노력은 코로나 팬데믹의 여파로 타격을 받았다. 팬데믹 이후, 구포국수를 알리려는 노력이 어떤 식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구포역 인근에 위치한 구포국수체험관. 현재는 체험관과 함께 국수를 판매하는 식당을 운영 중이다.> ⓒ무경
<구포연합식품 건물에 적힌 ‘구포국수’ 네 글자는 구포국수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음을 알리는 것처럼 보인다. 구포역 인근의 밀당브로이는 구포를 국수를 너머 밀을 사용한 음식 전반으로 확장시키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보인다.> ⓒ무경
구포국수, 낙동강 내음 머금은 부산의 하얀 맛
날이 약간 선선해진 것 같아 오랜만에 구포시장에 나가 보았다. 아직은 걷기엔 더운 날씨여서, 구포시장 안에 자리잡은 어느 국수집에서 냉국수를 시켰다. 잠시 기다리자 곧 차갑게 식힌 멸치와 디포리로 우려낸 육수가 부어진 채 뽀얀 흰색 면이 탐스럽게 담겨서 나온다. 같이 내어 주는 따뜻하고 진한 국물 또한 절로 입맛을 돌게 한다. 냉국수 한 그릇을 순식간에 맛있게 먹었다. 싸고 푸짐하고 빠르게 허기짐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국수의 미덕이다.
뱃속 그득해진 느낌을 즐기며 일부러 천천히 시장 근처를 걸었다. 경부선 철길 옆으로 걷다 보면 아파트가 들어선 사이로 구포에 유일하게 남은 국수 공장, 구포연합식품이 보인다. ‘구포국수’라는 네 글자를 건물에 당당하게 박은, 구포국수의 자존심처럼 보이는 건물이다. 네 글자를 가만히 쳐다보며, 입안에 아직도 짙게 감도는 멸치와 디포리, 그리고 국수의 짭짤한 맛을 느껴 본다.
이 철길을 넘어 조금만 걸어가면 낙동강 강변이 보일 것이다. 구포는 낙동강과 철길, 그리고 구포국수로 내 삶에 짙은 부산 사람의 흔적을 남겼다. 이 경치는 비단 구포만이 아닌, 부산을 대표할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언젠가 이 느낌을, 이곳의 국수 맛을 볼 때 함께 하는 낙동강과 구포시장의 공기와 경치를 소설에 듬뿍 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