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복도로를 한참 달렸다. 산중턱의 좁고 구불구불한 오르막 도로를 계속 달려 나가던 버스가 꼭대기 즈음에서 멈췄다. 종점인 안창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어르신들이 느릿느릿 내렸고, 나도 그분들의 뒤를 따라 내렸다.
부산에서 오래 살았지만, 안창마을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산이 둘러싸 있고 그 아래 작고 오래된 집들이 풀숲과 어울려 서 있는 모습은 뜻밖에 완전히 낯설지만은 않았다. 어릴 적 산성마을에 갔던 기억이 절로 떠올랐다.
산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마을. 부산에서 기대하지 못한 고즈넉함이 깃든 마을. 안창마을의 첫인상은 그러했다.
마을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안창마을의 모습 ⓒ무경
안창마을은 엄광산 깊숙한 곳에 있는데, 행정구역으로는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과 부산진구 범천2동에 걸쳐 있다. 안창마을을 둘러싼 산 한편으로 동의대학교 건물이 보이지만, 그 외에는 온통 산자락과 하늘뿐이다. 산자락 따라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렇게 깊은 산에 마을이 형성되려면 그래야 할 이유가 필요하다. 안창마을은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는 630만 명에 달하는 피란민이 모였고, UN군 병력과 물자 또한 집결했다. 결국 피란민들은 평지를 벗어나 산자락 여기저기를 제 거주지로 삼았다. 현재의 감천문화마을, 아미동 비석마을, 우암동 적기마을 등은 그때 만들어진 산동네를 근원으로 한다.
안창마을의 지리적 특성을 보여주는 간판 ⓒ무경
이때 안창마을에도 피란민들이 몰려들었다. 깊은 산이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전기, 상수도 등의 시설이 들어오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호계천과 산줄기를 따라 파놓은 우물로 생활용수를 확보했으며, 몇몇 집은 산 아래에서 전기선을 끌어오기도 하면서 생활 기반을 다져 나간다. 안창마을에서 오리불고기 장사를 시작한 것도 이 당시였다. 산비탈이 많아 농사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탓에 마을에서 키우거나 외부에서 기른 오리로 오리불고기를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안창마을의 오리불고기는 맛이 좋다고 소문나서, 이곳에서 파는 오리불고기를 먹으러 일부러 자동차를 타고 올 정도였다고 한다. 아직도 마을에는 오리불고기를 파는 가게가 남아있다.
안창마을에는 여공도 많이 살았다. 이들은 산 아래 범일동 여기저기에 있었던 삼화고무, 동양고무, 태화고무, 국제상사, 조선방직 등에 다니며 일했다.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에 산을 내려가 공장에 출근하고, 해가 지고 달과 별이 뜰 때에야 산을 다시 올라가곤 했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안창마을 주민들은 산에서 바위를 깨서 가져와 도로를 만들었고, 관에서는 품값으로 보리와 밀가루를 배급했다.
마을에 오래 살았던 주민들은 아직도 이 길을 ‘보리 밀가루 도로’라고 부른다. 하지만 잘 닦인 도로 때문에 마을의 운명이 바뀐다. 고생하여 돈을 번 주민들은 새로 닦은 도로를 따라 아래편 시내로 이주했다. 조선방직이 문을 닫고 고무공장들도 쇠퇴하기에 이르자, 안창마을의 새벽과 저녁을 지키던 여공들도 안창마을을 떠났다.
그렇게 마을은 활기를 잃었다. 다시금 사람들 모르게 숨어 있는 마을이 된 셈이다. 안창마을의 백년도 채 되지 않는 역사는 그렇게 지금에 이르렀다.
호랭이마을 회관. 안창마을의 한가운데 있으며 주민들의 모임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무경
안창마을을 검색하면 ‘호랭이마을’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이는 마을을 다시 예전처럼 활기찬 곳으로 만들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낸 자발적인 아이디어라고 한다. 실제로 마을에서 2013년에 쓴 ‘호랭이마을 선언문’이라는 글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호랑이일까?
부산이 다른 대도시와 다른 점 중 하나를 꼽자면 도시를 지배하는 여러 산을 말해야 한다. 도시의 지명부터 산(山)이라는 한자가 들어가지 않는가. 부산 사람들은 산과 바다를 생활 공간으로 삼아 살았다.
산이 많은 곳이니만큼 부산 여기저기에는 호랑이가 많았다고 한다. 호랑이 흔적이 가장 많이 남은 곳이 범일동과 범천동 일대다. 지명부터 ‘범’이 들어가고, 범내골이라는 지하철역명과 호계천이라는 개천 이름에도 뚜렷하게 남았다. 이런 지역이니만큼 범천동 꼭대기의 안창마을을 ‘호랭이마을’이라고 이름 붙여도 이상할 것 같지는 않다. 마을이 되기 전에는 정말로 이 산자락을 따라 호랑이가 어슬렁거렸을 테니까.
마을을 살리려는 노력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2007년에는 문화관광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안창고’가 마을에 시행되면서 마을 곳곳에 많은 벽화가 그려졌다. ‘행복마을 만들기’, ‘오색빛깔 천연공방’, ‘안창마을 예술상상마을 사업’ 등의 사업 또한 진행되었다. 하지만 마을 주민의 고령화와 낙후된 생활환경이 걸림돌이었다. 제2의 감천문화마을을 노린 이 사업들은 그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곳을 ‘안창매화마을’로 홍보하는 게시판이 보였지만, 정작 매화의 명소로 이곳의 이름을 들은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오히려 그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안창마을 초입. 안창마을이라는 안내 문구와 마을의 역사를 안내하는 표지가 설치되어 있다. ⓒ무경
안창마을의 첫인상은 수십 년 전의 산성마을을 닮아 있었다. 최근 산성마을은 카페 등이 들어오면서 예전의 아늑하고 은밀한 느낌 대신 관광지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곳의 옛모습을 그리워하는 이라면, 안창마을에서 그때의 느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안창마을에 도착한 뒤 좁은 골목 여기저기를 누볐다. 골목을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싱그러운 나무와 흙의 냄새가 물씬 퍼진다. 깊은 산에 조성된 마을이다 보니 마을 바로 뒤에 울창한 숲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마을 여기저기로 보이는 크고 오래된 나무는 신성한 분위기까지 느껴진다. 골목 깊숙한 곳, 마을에서도 높은 곳에 올라서니 부산 시가지가 내려다보인다. 부산을 이런 느낌으로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했다.
안창마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부산 시내. 시내의 고층 아파트와 안창마을의 낮은 집이 대비를 이룬다. ⓒ무경
좁은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뜻밖의 거주자들을 만났다. 고양이들이었다. 한 무리의 고양이가 골목 여기저기서 햇볕을 쬐며 한가함을 즐기고 있었다. 낯선 사람인 내가 등장하자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도망치기는 귀찮은 듯 그저 지켜만 볼 뿐이다. 내가 지나갔던 길에 어느새 고양이 한 마리가 길게 드러누웠다. 마치 자기가 이곳의 주인인 양 당당한 자세다.
골목을 나와 안창마을 아래로 내려가는 길에도 또 한 무리의 고양이를 만났다. 고양이들이 나를 따라오며 다리에 몸을 비비적거린다. 사람을 두려워해 숨지 않고, 오히려 사람을 안내하는 것만 같은 모습이다. 호랑이가 떠난 호랭이마을의 새 주인으로 호랑이를 닮은 고양이들이 자리 잡은 건가 하는 괜한 상상을 해 보았다.
골목길의 주인처럼 한가로이 누운 고양이. 호랑이를 닮은 줄무늬가 눈에 띈다. ⓒ무경
마을 꼭대기에서 차도를 따라 내려오면 호계천과 만난다. 호계천 근처의 골목을 다니다가 우물을 발견했다. 지금은 식수의 용도로 쓰고 있지 않지만, 우물 덮개를 열면 아직도 그 안에 맑은 물을 확인할 수 있다. 호계천의 시냇물과 우물에서 퍼 올린 우물물은 안창마을에 모인 고단한 이들의 목마름을 해결한 생명수였을 것이다. 우물을 보면서 뜻밖의 생명력을 느꼈다.
안창마을은 아직도 생기가 가득하다. 마을 곳곳의 크고 작은 나무들은 싱그럽고 힘차다. 물은 맑고 차갑다. 호랑이 대신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은 느긋하지만 활기차다. 부산에서 이렇게 생기가 가득 느껴지는 곳은 처음이었다. 산길을 오르내리느라 고단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찌든 때가 벗겨져 나간 것처럼 개운했다.
안창마을에 남은 우물. 실제로 우물 안에는 아직도 물이 마르지 않은 채 있다. ⓒ무경
이곳을 재개발하거나 관광지로 만들려는 움직임은 아직도 남아있다. 마을 주민들의 편리한 삶은 중요하고, 이곳에서 수익성 있는 사업을 진행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욕구가 안창마을이 지닌 귀중한 자산과 함께 할 방법은 없을까?
안창마을은 부산에서 가장 생명력 넘치는 곳이다. 대도시 한가운데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자 축복이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얽혀 있는 이곳 특유의 분위기를 어떻게 유지하고 지키면서 마을의 기능 또한 유지할 수 있을까?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몇 번이나 생각했다. 부산은 아직도 내가 모르는 모습을 많이 감추고 있었구나. 안창마을 답사는 그렇게 뜻밖의 선물로 다가왔다.
[ 무경 작가 기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