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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주둔기

미군주둔기의 역사(1945~2006)

  •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과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통치는 막을 내렸음. 이에 조선을 통치하던 식민권력은 물론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도 본국으로 돌아가고 그 대신에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인 연합국 미국과 소련의 군대가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였음. 즉, 38선을 경계로 북은 소련군에 의해서 남은 미군에 의해서 군정이 실시됨
  • 해방 이후 군정 통치를 위해서 남한에 들어선 미98군정단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본국으로 철수하였으나,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 왔음. 이처럼 미군의 한국 주둔 역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잠시 공백기가 있었을 뿐으로 오늘날까지 약 67년간 지속되고 있음
  • 부산 서면 미군부대가 주둔해 있었던 하야리아 캠프도 2006년 폐쇄 이후 기지의 역할을 옮기기까지 그러한 주한미군 역사의 일부인 동시에 한국현대사의 한 마디를 이루면서 부산시민과 애환을 함께 해 온 우리의 역사이기도 함
  • 미군의 부산 주둔은 남북한 긴장 관계 속에 군사적 안정이라는 국가차원의 목적 이외에도 하야리아라는 소규모 독립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속에서 그들의 새로운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으며, 서면과 남포동 등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상당하였음
  • 한편 또 다른 관점에서 미군의 철수와 공여지의 반환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도 점차 높아져 시민운동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음. 1995년에 즈음하여 캠프 하야리아 이전 및 부지 반환을 위한 각종 시민사회단체가 결성되면서 시민공원 조성 운동이 본격화 됨. 아울러 한·미간 관련 협정을 상호 타결하여 2006년 부지를 폐쇄하고 이후 환경조사와 공원설계를 마무리하여 2011년 8월, 드디어 역사적인 부산시민공원 조성 기공식을 개최하게 되었음

해방 후 부산의 거리 사진

해방 후 부산의 거리

미군 부산진주 기사(민주중보)

미군 부산진주 기사 <민주중보>

미군 진주를 환영하는 치안대 시가행진(1945. 9.16) 사진

미군 진주를 환영하는 치안대 시가행진(1945. 9.16)

6사단 시가행진(1946.7.4) 사진

6사단 시가행진(1946.7.4)

미보병 6사단의 시가행진(1946. 7. 4) 사진

미보병 6사단의 시가행진 (1946. 7. 4)

정문 출입구 G1(현 성지초등학교방면) 사진

정문 출입구 G1(현 성지초등학교방면)

퀀셋막사(T226)에서 G4(현 국립국악원)방향으로 찍은 사진

퀀셋막사(T226)에서 G4(현 국립국악원)방향으로 찍은 사진

서면경마장 1948.09.사진

캠프하야리아(장교클럽)
  • 해방 후 부산의 거리 사진
  • 미군 부산진주 기사(민주중보)
  • 미군 진주를 환영하는 치안대 시가행진(1945. 9.16) 사진
  • 6사단 시가행진(1946.7.4) 사진
  • 미보병 6사단의 시가행진(1946. 7. 4) 사진
  • 정문 출입구 G1(현 성지초등학교방면) 사진
  • 퀀셋막사(T226)에서 G4(현 국립국악원)방향으로 찍은 사진
  • 서면경마장 1948.09.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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